[연재-13] 하나님 나라의 선교 | 예배의 영광에 참여하기

예배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경험을 가지게 한다. 다시 말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삶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는 체험을 준다. 교회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이미 임하여 있는 천국을 예배를 통하여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명성훈, 1993: 79-80).

인간은 예배드리기 시작할 때에라야 비로소 성장을 시작한다 (Coolidge).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찬양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살아있는 예배 공동체가 될 것이다. 교회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자신을 갱신하며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벧전 2:9).

예배의 영광 (The Glory of Worship)

교회는 예배의 영광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된다. 인간은 예배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엡 1:11-12; 그래함 켄드릭, 1989: 11). 모든 성도들은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화롭게 할 것이다. 윌리암 니콜스(William Nicholls)는 이렇게 말한다: “예배는 기독교회의 가장 숭고하고 필수적인 활동이다.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은 사라지게 되더라도 오직 예배만은 하나님 나라에까지 남아있게 될 것이다”(1958: 9).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통치 영역이 되는 것이다.

그럼 예배란 무엇인가? 랄프 마틴(Ralph Martin)은 예배란 “하나님의 지고한 가치를 역동적으로 찬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Martin, 1982: 4). 로버트 웨버는 예배가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만남”이라고 정의한다(1994: 8). 이렇게 예배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필자는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에 몰입해 있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찬양이나 묵상이나 감사나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감동적이고 능력있게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다.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완전한 사역이 바로 성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영광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가능하다. 초대 교회의 예배 원형(worship prototype)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구원의 은총을 기리는 예배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에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된 인간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격과 능력을 알게 된다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만으로도 우리는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칼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기독교 예배는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이다 (Barth, 1965: 13). 그것은 호흡이 있는 자의 의무이다(시 150: 6).

예배의 의미 (The Meaning of Worship)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하고, 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교회가 부흥한다. 존 랑카스터(John Lancaster)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배에 실패하는 교회는 참 사명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는 교회이다. 전도를 아무리 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아무리 채워준다 할지라도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사명이다 (Lancaster, 1975: 77).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질 때 불신자들이나 신앙을 잃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된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삶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일상 생활의 관심사를 뛰어넘어 진리에 대한 관점을 제시해주며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도록 도전을 준다. 역동적인 예배는 인생을 변혁시키고 풍요하게 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거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민감성이 없다면 예배는 단지 공연(performance)이 되어버린다 (Gibbs, 1993: 110).

예배는 영성의 바로미터이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예배에서 실패할 때 부패하거나 타락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사람들이 예배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의식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해 자주 경고하셨다 (예, 암 5:21-24). 의식적인 예배 형식이나 공의의 삶이 뒷받침되지 않은 희생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텅 빈 예배는 혼합주의와 섞이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는 헌신된 삶의 표현이다. 모든 예배 행위는 새롭게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시 40: 6-8). 현대 교회에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은 현대 교회의 영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은 예배 갱신의 실패와 깊은 연관이 있다.

예배는 사람들을 기쁨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독일에서 여러 교파에서 온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동방정교회의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예배는 3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예배 시간 내내 사제와 그를 뒤따르는 성도들이 향불을 피워댔다. 처음에는 그러한 예배 형식이 매우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그 예배의 전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향불은 구약 시대 성막에서 24시간 하나님께 피워드린 것으로 성도의 경배와 감사의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국적과 나이, 다양한 교회 전통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예배의 형식을 초월하여 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예배는 사랑과 기쁨의 힘을 얻는 하나됨의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살아있는 예배를 향하여 (Toward a Living Worship)

교회가 참으로 살아있는 예배 공동체가 될 때 역동적이고 활기찬 예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전체 회중이 참여하게 하라

예배의 초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예배에서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이시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성례전 등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으로 들어가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인격과 그 사역에 대한 찬양보다는 회중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오락적 요소가 현대교회의 예배에 많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 지향적인 찬송과 시편 찬송, 죄의 고백, 신앙고백, 주기도문 등이 적절히 예배에 삽입되어야 할 것이다 (로버트 웨버, 1994: 244-245).

예배는 사회자나 설교자만의 행위가 아니라 전체 회중의 행위이다. 인도자, 기도자, 성경봉독자, 설교자, 안내 및 헌금위원, 성가대, 그리고 회중 등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회중이 어떻게 예배를 이해하고 참여하는가 하는 질문은 예배 갱신을 위해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조기연, 1999: 173). 예배는 회중의 온전하며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예배가 참여하는 회중 모두에게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예배에서 회중은 관중이 아니라 참여자이다. 교회는 회중 참여의 방법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회중의 참여가 없는 열린 예배는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에 가까울 수 있다.

2. 예배의 공동체성을 살리라

공동체적이고 역동적인 예배가 제공하는 선물(gifts)은 네 가지이다(Callahan, 1994: 4-5). 첫째, 예배는 성도의 삶에 능력을 준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누구이고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킨다. 둘째, 예배는 성도의 삶에 공동체를 건설해 준다. 혼돈과 혼란의 세계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경배할 때 소속감과 하나됨을 발견하게 된다. 셋째, 예배는 성도의 삶에 의미를 준다. 예배를 통하여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는가 점점 분명해진다. 인생의 역경은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이 된다. 넷째, 예배는 성도의 삶에 희망을 준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 생명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인생의 비극과 슬픔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된다.

기독교 예배는 공동체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배의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첨단 전자 매체 시대가 되면서 예배의 개인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TV나 인터넷 또한 가상공간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가 단지 설교를 듣는 것이라면 굳이 예배당에 가서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멀지 않은 장래에 회중의 감소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기연, 187). 예배는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공동체적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성만찬의 회복이 중요하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부정기적으로 성만찬을 거행해왔다. 그래서 성만찬은 정규 예배가 아니라 1년에 3-4번 하는 행사쯤으로 여겨졌다. 개신교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보니 설교 말씀만 들으면 예배를 드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일어난 예배 운동은 예배가 주의 식탁에 둘러앉은 주의 백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동방정교회와 로마카톨릭교회, 그리고 루터교회와 성공회 미국 주류 장로교회 등에서는 정규 예배에서 매주일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을 지키게 되었다. 말씀과 성례전은 모두 초대 교회의 예배 전통이다. 예배는 단지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한 사람이 연출하고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는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3. 예배 형식과 자유의 균형을 살리라

예배에는 적절한 상징과 의식도 필요하다. 예배를 지나치게 영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언어와 동작, 그리고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상징을 통하여 비가시적이고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의 상징성을 위해서는 예배당 공간의 배치, 예배의 순서, 성례전, 침묵 등의 요소를 교파의 전통과 신학에 맞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회중 예배는 딱딱한 의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의식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고 자발성을 너무 강조하면 무질서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로버트 웨버, 1994: 246). 전 예배 과정에 일관된 형식이 있으면서도 찬양과 기도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자발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찬양 시간이나 개인기도 시간을 주면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 생활 예배의 영성을 발전시키라

필자는 앞에서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에 몰입해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진정한 예배는 은혜를 느끼거나 받은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승화된다. 경건한 예배는 타락하고 부패한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불쌍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삶(약 1:19)으로 인도될 것이다. 구원이 고립된 개인들의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은 기독교 복음의 총체성을 왜곡시킨다. 이것은 회심과 개인적 결단에 대한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듭난다는 것”은 개인적인 종교 경험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죄의 사함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도록 소명을 받는 것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예배와 공적인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복음의 열매들이 오늘날의 혼돈된 세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면 예배와 사회생활, 전도와 사회참여, 신앙과 봉사 등을 함께 이끌어내는 새로운 영성의 필요성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Padilla, 1999: 454).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영성은 기독교 사역에 풀 타임으로 헌신하려고 하는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삶의 직업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예배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의식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선교적 소명을 자각하는 장이다. 공예배에서 하나님을 찾는 교회는 일상 생활에서도 하나님을 택하게 될 것이다(프랭클린 지글러, 1979: 244). 예배는 성도의 사명(vocation)과 관계있으며, 성도의 섬김의 동기는 예배의 영감에서 발견된다.

예배로의 지고한 소명 (The High Call to Worship)

교회의 진정한 혁신은 참된 예배의 결과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고 변화는 오지 않는다. 교회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웰리슬리(C.A. Wellesley)의 시처럼 진실된 경배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주 예수님,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께 몰입하게 하소서

나를 향한 주님의 모든 생각과 역사하심을 회상하오니

주님의 은혜의 영광을 드러내는 비밀스런 이야기들뿐입니다.

주 예수님, 주님께 사로잡하게 하소서.

나의 모든 기쁨과 만족이 주님 안에 있사오니

주님은 나에게 가장 친근하고 흠모할 분이옵니다.

예배로의 부르심은 보편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다(Tippit, 1989: 11). 그것은 개인이나 교회에게 주어진 가장 지고의 소명이다. 현대 교회는 예배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성도들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주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예배의 감격에 빠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배는 단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제이며 그분의 은혜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예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참된 예배의 회복이 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2.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역동적인 예배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열린 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에 대해 평가해 보라.
  4. 예배의 공동체성을 살리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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