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감정이 통해야 한다 (Let Your Emotions Be in Tune with God)

사람이 제일 행복할 때에는 서로 사랑의 감정이 통할 때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의미가 있고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랑에 빠지면 주님과의 감정이 서로 통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우리가 느끼게 되고 기쁨과 용기와 소망을 얻게 됩니다. 신앙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우린 하나님과 감정이 통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할 때에도 감정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쉽고 효과적인 기도는 감정이 솔직한 기도입니다. 우리 마음과 소원과 꿈을 있는 그대로 쏟아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 6:5-8). 저는 제 나름대로 어떤 것을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눈물과 인간의 눈물이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서는 더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전도 사역도 하나님과의 감정이 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면 전도의 사명자로 쓰임받기 힘듭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싫어해서 도망을 갔지만 물고기 배속에서 징계를 받은 후 다시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으로부터 온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요나는 그들이 회개하는 것이 싫어서 시든 박넝쿨을 보고 뜨거워지자 하나님께 원망과 성질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 네가 수고도 아니하고 배양도 아니한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니느웨 성의 수많은 사람들을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않냐”(욘 4: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끼지 않고서는 전도나 선교가 형식적인 의무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언 사역도 하나님과의 감정이 통해야 합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언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예언자가 하나님의 분노의 마음과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구약의 소선지서인 나훔서는 악한 앗수르에 대한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교만과 죄악과 악행에 대하여 분노를 품으셨습니다: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나 1:6). 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고 대언한 자가 바로 나훔이었습니다. 예언 사역도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을 느껴야만 가능합니다.

예배할 때도 감정이 메말라선 안되고 풍부한 것이 좋습니다. 기뻐할 때에는 기뻐하고 울고 싶을 때에는 울면서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경배해요 내 영혼 기뻐 오 나의 왕 나의 목소리 주님 귀에 곱게 곱게 울리길…” 우리 목소리와 우리 마음이 주님을 기뻐하며 주님의 귀와 마음에 매일 올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은 하나님과의 감정과 마음이 통해야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이 우리와 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더 사랑에 빠지고 감정이 잘 통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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