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눈, 마음의 눈, 그리고 영의 눈과 같이 3가지 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눈이나 마음의 눈보다 더 중요한 눈이 바로 영안(spiritual eyes)입니다. 전파나 자외선, 공기나 산소, 사랑이나 소망 등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말합니다(히 11:1).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나 천사들, 그리고 영의 세계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영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 123:1). 우리가 기도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주목하여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시 11:4).

아람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수많은 군대를 보냈을 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그 종의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군대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왕하 6:14-1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풀어주시고 함께 기도할 때 영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눅 24:27-31). 큰 믿음과 적은 믿음의 차이는 주님을 바라보는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풍랑과 바람을 바라보자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바람을 바라본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적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 14:30).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아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기적이 사라집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도 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만 바라보고 성가대를 조직하여 내보냈을 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NIV: Our eyes are upon you).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 질병이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초대 기독교의 상징은 ‘익투스’, 즉 물고기였습니다. 익투스는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데오스 휘오스 소테르”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인데 그 뜻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다”란 뜻입니다. 그 머리글자를 합해 발음하면 헬라어로 익투스가 되고 그 뜻은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은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눈을 뜨고 죽는다고 합니다. 육체의 눈은 휴식이 필요하고 늘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눈이나 영혼의 눈은 늘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합니다(NIV: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저와 여러분 모두 다 영의 눈을 열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집중하여 항상 바라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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