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죽마고우는 예수님이시다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뒤러는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을 비롯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표작은 뉴른베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져 있는 “기도하는 손”입니다. 이 그림은 그의 인생 경험이 담긴 그림입니다.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주 가난했던 뒤러는 미술을 하는 친한 친구 한 명과 약속을 했습니다. 한 쪽이 그림 공부를 하는 동안 한 쪽은 노동을 하고 서로 학비를 돕기로 한 것입니다. 뒤러가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화가로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이젠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마침 기도 중이었는데 그 기도 내용이 뒤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친구 뒤러만은 화가로서 크게 성공하게 해주옵소서.”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채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도의 친구, 믿음의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보통 오래된 친한 친구를 “죽마를 타던 어릴 때의 친구”란 뜻으로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죽마고우를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치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죽마고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마음을 주고, 고통을 나누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진짜 죽마고우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으며 목숨을 바치셨고 그분의 모든 마음을 주셨습니다(요 15:13).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가 되셨고,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우리 친구”(요 11:11)라고 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이제부터는 너희가 나의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눅 12:4; 요 15:15).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하나님의 친구로 인정을 받았습니다(약 2:23; 출 33:11).

우리가 예수님의 친한 친구가 되면 예수님과 비밀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요 15:15). 인간의 교제는 대부분 처음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끝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 성품, 연약한 부분과 단점, 그리고 허물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시고 사랑하시는 친구이십니다. 그래서 새찬송가 92장 1절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하늘 위에 계신 나의 친구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새찬송가(회중찬송) 90장 2절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친구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나 주님을 늘 믿으며 그 손을 의지하고 내 몸과 맘을 바쳐서 끝까지 충성하리.” 우리는 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이 많으시고 고결하신 주님과 수준이 맞추어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요 15:14). 성경은 마음의 정결이 있는 자와 덕이 있는 말을 하는 자에게는 임금조차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잠 22:11).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거룩해질 때 주님을 보게 되고 주님과 친밀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친구로 삼은 자의 행복은 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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