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감사하라

시편 136편에는 1절부터 26절까지 ‘감사하라’는 명령이 26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런데 감사의 이유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또 26번이나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NIV 영어 성경에는 인자하심을 “오래 참는 사랑”(enduring love)으로 표현합니다. 시편 100편에도 보면 감사의 이유가 똑같이 나옵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 100:5). 대저라는 말을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키이’로서 ‘왜냐하면’이란 뜻입니다. 감사의 시편으로 불리는 시편 100편은 이 땅의 온 백성들이 감사절의 제사에 참여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성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선하지 못하고 인자하지도 못하고 성실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공의대로만 심판하시면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과 재산을 많이 상속받기 위해 장자의 축복을 속인 야곱을 인자하심으로 받아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동족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었던 모세를 인자함으로 품어주시고, 간음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이게 한 다윗왕도 용서하시고 선대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크리스천들을 옥에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였던 바울을 용서해 주시고, 자신의 스승을 배신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를 다시 받아주시고 돌보아주신 분이 바로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의 바로왕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신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한없는 성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인도하신 분이 바로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실망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그런데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그동안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으시고 답답하셨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시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인보다 죄인을 가까이 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하지만 한없는 인자로 우리를 또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줄을 매달아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끊으면 또 줄을 매십니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끈을 매는 만큼 끈은 짧아지게 되고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23절 말씀을 가지고 만든 복음성가가 있는데 한 번 불러볼까요?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인자하심에 대하여 영원토록 묵상하며 감사,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시다(Praise the enduring love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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