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 고통의 삼중 축복

예수님은 체포당하시던 그 날 밤에 전혀 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군단(오늘날로 치면 약 6천 명의 군대) 더 되는 천군 천사를 오게 하여 자신을 구출할 수 있으셨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마 26:53). 주님은 심문을 당하실 때도 자신에 대해 전혀 변호하지 않으셨고 사람들도 이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주님은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변호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은 메시아의 십자가의 고통과 그 의미에 대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기에서 나오는 “찔림, 상함, 징계, 채찍”이라는 단어는 주님의 십자가 고통이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런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했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인간의 죄와 허물을 사하심으로 구원과 영생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하늘의 몰래 카메라로 보면 죄를 짓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법을 어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값을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치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다리에 피를 흘리며 산 속으로 도망갑니다. 적들이 사냥개를 몰고 피 냄새를 맡으며 쫓아갑니다. 사냥개들은 점점 그에게 가까이 오게 됩니다.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한 그는 한참을 도망가다 강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강에 몰래 몸을 담그자 집요하게 따라오던 사냥개의 추적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사냥개들이 피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죄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우리를 공격하려고 사냥개와 같이 따라(달라)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은혜의 강물에 담그게 되면 내 죄가 씻어지고 용서받고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요 1:12).

주님이 또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신 것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화평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사람들과도 화목해집니다(엡 2:14-16).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끼리 싸우는 것이 제일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하나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주님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사 대신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먼저 이해하고 희생하고 용서하며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peace-maker)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또 우리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시는 복을 주시기 위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픈 모습 그대로, 병든 모습 그대로, 문제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다 치유받고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고통과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희생의 피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만 합니다(새찬송가 151장 후렴).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에게 주신 이런 놀라운 복들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cf. 고전 1:18; 요삼 1:2). 그리고 이제는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어느 것도 자랑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갈 6:14). 우리 가슴에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만 매일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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