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교회와 국가의 관계

종교는 정치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오랜 역사 동안 종교와 정치는 서로 밀착되어 왔다. 미국에서는 2001년 9 · 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민주화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던 진보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왔지만, 최근에는 보수와 진보 간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교회의 정치 참여’라는 주제가 한국 교회에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여기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 유형을 살펴보고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1. 종교와 정치의 융합

먼저 종교와 정치의 융합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교 혼합이 본래 정치와 종교의 관계였다. 정치는 종교에서 분화되지 못하고 서로 혼합되어 매우 오랫동안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미분화 상태의 종교와 정치에서는 신학적 세계와 인간 현실 세계가 긴밀히 밀접해 있었고, 일원론적 세계관이 지배하였다. 그래서 다니엘 레빈(Daniel Levin, 1981)은 “대부분의 문화적 전통 안에서 종교와 정치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정교분리 사고는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 발전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전에는 일반적으로 분리가 불가능했다.

종교와 정치의 융합형태는 누가 전체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것이냐의 문제이며 그 형태는 법의 형식과 내용 안에서, 교육 구조 안에서, 그리고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 안에서 다양할 수 있다. 물론 종교와 정치는 제도적 관점에서는 구분된다. 이것이 유명한 양검론(Two swords doctrine)으로 교회의 영적인 검과 정부의 세속적 검은 서로 지배 임무를 양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 가톨릭의 입장은 영적인 권위와 세속적 권위의 긴밀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가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것은 양자가 중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레빈은 정치는 사회에 형태(Form)를 부여하고, 종교는 가치(Value)와 상징(Symbol)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 역사 상황 속에서 존재한다. 종교적 입장들은 불가피하게 현실적 결과를 갖게 되며 현실적 문제들은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의 사회적 영향은 설교, 훈계, 혹은 공적인 이슈에 대해 제한된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현실 속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영역의 분리가 분명치 않아서 피차에 영역을 침범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양 2천 년의 역사는 종교와 정치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양자 간 불행한 충돌이 많았다. 각 영역이 침범당하는 일에 대하여 항거한 경우 심각한 충돌을 빚기도 했다.

 

2. 정교분리

종교와 정치의 또 다른 양상은 정교분리이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와 정치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서로 갈등의 양상도 지속되었다(Reuther).

정교분리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인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였다. 그는 1569년 영국 국교회가 감독제를 고수하는 데 반발하고, 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는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정교분리를 주장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 교회에 장로주의 바람이 불면서 영국 왕이 통치하는 국교회에 반발하는 회중 교회 주의자들은 교회의 독립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강화하였고,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자유 추구가 민주주의 정치 형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론을 바탕으로 민주적 정치이론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을 뒷받침하여 존 밀턴(John Milton)과 존 로크(John Locke)와 같은 사람은 왕이 주권자가 아니고, 온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국민 정부론을 주장하였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교분리가 대두된 것은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지 10여 년이 지난 1631년이었다. 초기단계의 13개 주는 주 별로 교인들만이 선거권을 갖는 등 교회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이에 매사추세츠 주 샬렘교회에서 시무하던 윌리암 로저스(William Rogers) 목사가 신대륙의 각 주들이 신정정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교회가 정치를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이다.

처음에 장로교인들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찬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국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미국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종교의 제도적인 다양성에 의해 촉진되었다. 많은 개신교 그룹이 미국으로 건너왔고, 국교회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대규모의 가톨릭과 유대인들의 이민이 시작되면서 개신교의 지배조차 와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 정교일치 제도가 정교분리 제도로 대체된 까닭은 정교일치는 비국교를 신봉하는 이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 대우와 인권 침해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상 정교분리 제도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도입되었고, 현재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치와 종교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로 인정되고 있다. 정교분리 정책의 발상은 목회자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그 이유는 국가 권력이 국교를 만들어 신앙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어느 한 교파를 국가가 공인함을 피하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종교 활동을 돕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3. 종교와 정치의 변증법적 균형

레빈은 종교와 정치의 변증법적 균형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주로 경쟁적인 면이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시각은 종교개혁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유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사상에 기원하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뿌리박고 있다. 이러한 사상에 의하면 종교 제도와 지도자는 예배 의식과 같은 명백히 종교적이지 않은 활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만 하고 정치와 사회질서에 대한 관심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의미를 제공하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시한다면 종교와 정치 간의 단순한 구분선보다는 양자 간의 진정한 연계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되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변증법적 균형에 해당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즉, 교회는 종교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의 남용 앞에서 비판적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는 이러한 종교와 정치의 변증법적 균형을 양자 간의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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