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성경의 계명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계명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진정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마 5:45).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해 질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6-48).

“원수를 사랑하라”고 할 때 이것은 감상적인 사랑이 전혀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좋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아무런 보답을 구하지 않는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으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감성적인 면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을 싫어하고 우리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부어 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롬 5:5).

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마르틴 루터 킹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첫째, 미움에 미움을 더하는 것은 미움만을 더하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미움을 폭력은 폭력을 완고함은 완고함을 더하여 파멸로 치닫게 됩니다. 둘째, 미움은 영혼을 손상시키고, 성품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미움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가 됩니다. 치유되지 않은 암처럼 미움은 품성을 좀먹고, 그 생명력을 먹어버립니다. 미움은 한 인간의 가치관과 객관적인 판단력을 파괴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상한 일들, 즉 내적 갈등은 미움에 근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셋째, 사랑만이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미움은 파괴하고 찢어버리는 것이고, 사랑은 창조하고 건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구속적인 힘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까지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고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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