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Mourn with Those Who Mourn)

제가 서강대 영문과에 들어가 배운 첫 수업이 영작문이었는데, 담당 교수가 처음으로 서강대에 부임하게 된 장영희 교수님이었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영어와 문학, 그리고 영작문 등에 탁월한 실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일간지나 잡지에 글도 많이 기고하시고 책도 많이 쓰셨는데 나중에는 결국 암으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분이 쓰신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프거나 상처 받을 때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말합니다(롬 12:15).

우리 주위에는 즐거운 자도 있지만 아파하고 우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을 때, 주님은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눅 10:36-37). 제사장이나 레위인 등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쳐버렸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건져주고 치료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강도 만난 자처럼 다치거나 힘들거나 슬픔과 어려움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슬픈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육신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더 아프고 치료도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모른체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시며 속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잠 24:12).

위로가 있는 곳에 사막이 오아시스로 변합니다. 위로가 있는 가정이 평안하고 위로가 있는 직장이 흥왕합니다. 위로가 있는 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독한 사람, 죽어 가는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슬프고 힘이 빠진 자에게 위로의 사람이 되는 것은 꼭 목회자나 주의 종들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 3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먼저 두기고입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골 4:7). 두기고는 소아시아 사람인데 바울의 조력자로서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가 골로새에 간 것은 골로새서라는 서신서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바울의 힘든 사정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 속담에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처럼 목회자나 선교사는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스스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상황을 누군가 말해주면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이 감동해서 그 어려운 사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도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는 자였습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골 4:9).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로마로 도망쳤기에 당시 법에 의하면 그는 죽여도 되는 중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회개한 후 신실한 믿음으로 바울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충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다고도 그런 자였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골 4:10). 여기에 나오는 이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 살던 유대인이었는데 전도자로서 고난 당하는 바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 사람입니다. 고난 중에도 충성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옥중수발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혼자서 아시아와 유럽을 복음화한 것이 아닙니다. 아리스다고 같은 분이 사도 바울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동역한 것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성도의 사명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우리 주위에 슬프고 힘든 이웃이나 친지, 또 성도들이나 주의 종들이 있을 때 함께 아파하고 위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명에 쓰임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