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표적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고자 할 때 요구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모세의 표적이나 엘리야의 표적을 기대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든지 하늘에서 불이 내리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요구하는 대로 표적을 보이면 그들이 믿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 39). 그들은 믿으려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을 핑계를 찾으려고 표적을 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싫어서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고 물고기 뱃속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기적으로 살아나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진노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큰 지진으로 니느웨 성읍이 무너질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알면서도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바다에 빠뜨리셔서 다시 살리신 후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며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요나는 아무런 표적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 말만 듣고서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믿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다는 것 외에 더 큰 중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군다나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며 무슨 표적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 수난과 부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여섯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절친한 부자 친구가 한 아이를 자기에게 양자로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간 다음에 남편과 아내는 그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 그들은 첫째 아이인 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이번에 역시 첫 딸이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아이는 장모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부인이 거절했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또 할아버지와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애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애기, 귀여운 것 남 줄 수 없어요”하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그 하나라도 기꺼이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독생자밖에 없었지만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2).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요나의 표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롬 8:38-39).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표적은 바로 사랑의 표적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적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나와 같이 영혼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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