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구원의 행복한 사명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기 전에 자기를 찾아온 어느 노신사를 소개하였습니다. 그 노신사는 목사님 설교 전에 강대상에서 다음과 같은 인사 말씀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그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그만 둘 다 바다에 빠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그 아버지 손에는 오직 한 사람 만을 건질 수 있는 구명동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아들 친구를 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들의 친구 죽게 놔둘 수도 없고…그 때 아버지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 아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 가지만,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아들 친구는 불신자라서 영원히 지옥에 가겠구나”. 그래서 그 아버지는 아들을 향하여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외치고 구명동의를 아들의 친구에게 던져 결국 아들은 죽고 아들의 친구는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도 그의 독생자를 죽이고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끝난 후 성도들이 이 노신사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까 그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 사람들 중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노신사는 대답했습니다. “조금 전에 설교하신 여러분들의 목사님이 바로 그 친구였고 죽은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었습니다.” 이 노신사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인생의 사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두 번 부르시는데, 한 번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고 또 한 번은 사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사람마다 사명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 구원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 3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전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사람을 전도하지 못합니다. 천사가 사람을 전도하지 못합니다. 동물이 사람을 전도하지 못합니다. 사람만이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사람을 볼 때 영적으로 보게 됩니다. 또 인생의 사명을 알게 되고 영혼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찬송가 495장 1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면 내 영혼이 은총을 입은 것과 또 다른 영혼들도 은총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전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노라”고 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영혼을 살리고 치료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사명을 알고 사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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