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9] 하나님 나라와 선교 | 그리스도의 발자취 따르기

서구의 기독교가 쇠퇴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를 절대적으로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데이빗 왓슨, 1987:13).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값없는 선물(롬 5:18)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순종이라는 값을 치러야 한다 (Peter Luckman).

교회는 미래가 이미 실체인 것처럼 현재를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관점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Kirk, 1999: 218).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왕권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도록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1) : 전도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2) : 제자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3) : 은사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4) : 치유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5) : 일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6) : 예배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7) : 평화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8) : 정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9) : 환경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10): 사랑 공동체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의 문제 (The Problem of Nominal Christians)

오늘날 교회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하 명목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명목성은 하나님의 공동체의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Hong, 1999).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고하게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순종하기를 촉구하면서(사 1:18-19) 계속해서 사자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말씀하셨다(사 29:13; 렘 12:2).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랐지만 나중에는 배척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 올 것이라”고 말하셨다(마 7:21). 우리는 또한 사데 교회에서 명목성의 문제를 보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라고 책망하셨다(계 3:1-3). 예수께서는 일깨워 그 남은 것을 굳게 하고, 받은 말씀을 순종하여 회개하라고 요구하셨다.

명목성(nominalism)의 문제는 단지 서구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피터 브라이얼리(Peter Brierley)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도 아닌, 관념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프리카에는 51퍼센트, 오세아니아에는 53퍼센트나 된다. 누가 명목성의 기독교를 유럽의 문제라고만 말했는가?”(1997: 31). 교파 별로도 명목성의 분포를 보면 성공회(80%)가 가장 높고, 다음으로 오순절(54%), 장로교(51%), 감리교(42%), 그리고 침례교(40%)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교회의 명목성의 문제는 대륙이나 교파를 초월하여 세계적인 문제이다.

명목성의 차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출석하지 않고 교회에 속해있는 것(belonging without attending)이다. 이것은 국가 교회의 전통을 가진 유럽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사람이 되는 것은 루터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교회 출석율은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둘째는, 믿음 없이 교회에 속하는 것(belonging without believing)이다. 교회 내에는 보수주의로부터 자유주의까지 믿음 체계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다 정통적인 믿음 체계나 복음주의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셋째는, 출석하지 않고 믿는 것(believing without belonging)이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어떻게 공동체와의 상호 작용이 없이 믿음을 유지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한 조사 결과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을수록 기독교 신앙에서 점점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Davie, 1994).

필자는 다른 글에서 한국 개신교회 내부 자체가 “명목성의 배양기”이며 동시에 “선교의 대상지”가 된다고 주장하였다(Hong, 1999). 명목성의 문제는 교회의 영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명목성은 교회를 점차 약하게 하며, 교회의 공신력을 떨어뜨린다. 한국 개신교의 명목성의 문제와 사회적 공신력의 하락은 1990년대 이후의 교회 정체 현상과 연관성이 있다. 교회는 불신자들을 전도할 뿐만 아니라 전도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탈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양육되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할 사명(mission)을 가지고 있다.

헌신된 제자도로의 부르심 (A Call to Committed Discipleship)

딘 켈리는 <Why Conservative Churches are Growing>이라는 책에서 엄격함(또는 요구하는 것)이 교회의 구조적 능력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주장하였다(Kelly, 1986). 헌신된 교인들을 가진 “요구하는 교회”(demanding church)는 강력한 교회(strong church)이고, 엄격함(strictness)은 교인들을 헌신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교회성장을 초래할 것이다. 켈리는 미국에서의 주요 교단들이 의미를 창조하고 헌신을 유도하는 능력을 상실하면서, 엄격함을 상실했기 때문에 쇠퇴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켈리의 주요 논지는 단지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회들이 성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의미를 제공하며 헌신을 요구하는 엄격한 교회들이 성장의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성장과 선교에는 진지함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신약 성경은 제자도의 의미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도를 강조하여 가르쳤지만 교회는 이 가르침을 약화시켰다(샌더스, 1998: 151).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기가 있었고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도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고 큰 희생이 요구됨을 깨닫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곁을 떠났다. 그리스도의 관심은 사람을 많이 끌어 모으는 것보다는 참된 제자들을 길러내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가 될 때 따를 희생에 대해 숨기지 않으셨다(눅 14:25-33).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건설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복음전도는 제자화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이 배출되기 보다는 그저 교회에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하워드 슈나이더는 이것을 “제자훈련의 틈(gap)의 현상”이라고 부르고 있다(2001: 52). 복음에 대해 설명하고 가르침에 있어서 제자도의 유익과 희생을 숨길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며, 그의 새로운 공동체와 동일시하는 모든 자를 부르고 계신다(보쉬, 2000: 618).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도는 무엇으로의 부르심인가?

첫째, 제자도는 학습으로의 부르심이다. 제자(mathetes)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264회나 나온다. 제자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배우는 자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자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이 될 수 있다. 지도자들은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평생 배우는 자들이다. 구속받은 공동체는 아직도 여행 중이다. 그 여행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 세상에 편안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안주하는 신앙은 성장할 수 없다. 제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학습과 훈련에 대한 환경과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제자도는 순종으로의 부르심이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의 생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헌신과 섬김의 순종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였던 젊은 관원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론 사이더(Ron Sider, 1977: 87)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순종이었다. 순종은 가난을 유도할 수도 있다. 빈곤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 제자의 삶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이 아닌, 자기 자신의 종교적 이상일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좋아했지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즉 교회 속에서 본 것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는 7가지의 죄악들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일하지 않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없는 예배, 그리고 원칙 없는 정치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종종 말씀을 해석해 왔지만 이 세상에서 변혁적인 대리인(transformative agents)이 되는 데는 실패하여 왔다. 그것은 순종의 섬김이 수반되지 않는 말씀을 선포해 왔기 때문이다.

셋째, 제자도는 단순한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리차드 포스터(1995)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성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실 때 모든 안락과 물질적인 행복들을 포기하셨다. 단순한 삶은 단순히 물질적 소박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에 의하여 사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삶의 모든 필요가 공급됨을 믿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사치와 향락을 멀리 하고 현대 문화의 화려함을 분별해야 한다.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며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넷째, 제자도는 고난에로의 부르심이다. 기독교회의 가장 유명한 상징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 주요한 방법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진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발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요 12:26).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형태와 고난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이것은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이다.

초대 교부인 이그나티우스는 제자라는 말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자가 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데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였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편리함과 인스턴트 신앙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제자들이 필요하다. 프란시스 쉐퍼도 “이 시대는 적당히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살 수 없는 시대이다”라고 말하였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도 누군가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외한 부활의 영광만 가르칠 수 없다.

다섯째, 제자도는 성령의 능력을 통한 복음증거로의 부르심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한다. 라이튼 포드(Leighton Ford)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적합하지 않은 제국 건설은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자아를 높이는 일, 하나님의 비가시적 사역보다 가시적인 성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협동보다 대결을 조장하는 일, 그리고 책임성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아닌 모든 공력은 아무리 위대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다. 겸손하게 지속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만이 복음 증거 사역을 감당하는 길이다(행 1:8).

교회에서의 제자화 사역 (Discipling Ministry in the Church)

1. 복음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은 은혜의 선물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역할이나 지위나 행위에 관계 없이 주어지는 은혜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새로운 종류의 가치 체계에 의해 측정되는 존귀함을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즉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새로운 삶의 양식의 놀라움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주를 따르는 고난의 길을 가르쳐 주면서, 그 뒤에 있는 존귀와 영광에 대해 확증시키라. 복음을 피상적이고 교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제자도의 가치를 알 수 없다.

2. 전도와 제자화를 구분하지 말라

성공적인 사역을 하는 교회들이 복음 전도에 성공을 거두는 중요한 이유는 복음 전도를 제자화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은 단지 인간적인 결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조지 바너, 2001: 130).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은 단순한 회심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뒤의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구절과 밀접히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Newbigin, 1978). 이렇게 보아야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전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알파 코스가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불신자 전도 양육을 효과적으로 통합시키기 때문이다.

3. 소그룹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이며 하나의 공동체이다. 만약 구속이 개인적인 범주에서만 규정된다면 예수님의 사역 이야기는 개별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원리들만을 예증할 때만 중요할 것이다. 제자화는 철저히 공동체적 원리 하에 규정되어야 한다. 제자화는 특히 소그룹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Arnold, 1992: 23-24). 하워드 슈나이더는 제자훈련을 위한 사회적 하부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자훈련을 위한 하부구조는 지역적 상황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도날드 크레이빌(1999)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잘 표현되는 신앙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제자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공동체적 증거가 된다.

4. 제자의 모델링을 만들어라

옛 격언에 “들으면 쉽게 잊고, 보면 기억하게 되고, 행하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지역 교회에서 제자화 사역이 힘든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모델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회자 자신부터 섬김의 종과 제자로서의 리더십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교인들이 많을수록 교회는 연약해지고 대안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제자의 모델링이 많아질수록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는 배움과 순종과 단순성과 고난,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제자들을 길러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이긴 제자들은 어떤 사역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 것 같이 그 나라를 맡아서 일하게 될 것이며(눅 22:29), 더 나아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눅 22:30) (소기천, 2001: 84). 오늘날 세속화되는 현대 문화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자화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명목상의 기독교인 문제가 왜 교회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2.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데 있어서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 이라고 생각하는가?

3. 지역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실시할 때 어떤 점들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4. 예수께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의 말씀을 읽고 그 의미에 대해 토의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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