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8] 하나님 나라와 선교 | 아름다운 소식을 선포하기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고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에 의하여 수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는 주로 핍박을 받는 교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점이 순교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충성스러운 증언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Statement of the Stuttgart Consultation on Evangelism, 1987).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 (John Knox).

하나님 나라의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명제들(propositions)로만 구성된 복음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일관성 있고 통합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소개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좀 더 광범위하게 규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들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인간 사회와 역사 안에서 구현하려는 모든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면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제부터 교회가 구현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10대 특징과 사역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1) : 전도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2): 제자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3) : 은사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4) : 치유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5) : 일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6) : 예배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7) : 평화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8) : 정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9) : 환경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교(10): 사랑 공동체

선교의 출발: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공동체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의 출발점이요 핵심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다(Kirk, 1999: 36).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통치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엡 1:22; 빌 2:9-10).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주권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요 14:6).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성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공동체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는 공허한 연합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존재이다(Zizioulas, 1985). 삼위 하나님의 인격은 관계 안에서 서로에 의해 구성되어진다. 삼위 하나님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주심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자기 헌신(self-giving)의 존재적 본질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을 구원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게 만들었다. 코이노니아(koinonia)의 존재 양식을 가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삼위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반영하기를 원하신다. 교회의 미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입은 백성들의 상호적이고 개인적인 내주함에 있다. 교회는 전도(evangelism)를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도록 초대하여야 한다.

전도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전도 공동체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전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스탠리 그렌즈(Stanley Grenz, 1993)는 현대 교회의 위기가 정체성의 상실이며 이것은 전도신학과 사명의 부재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체성의 상실은 곧 교인 수의 쇠퇴와 영적 생명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원인 중의 하나는 전도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도에 대한 어떤 오해들이 있는가?(cf. 마이클 그린, 1994: 12-15).

1. 전도는 어떤 체계가 아니다. 전도 폭발, 사영리 등 전도를 쉽게 하는 훌륭한 전도 방법들이 있지만 전도는 그러한 체계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전도를 돕는 좋은 도구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어떤 체계로만 굳어진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2. 전도는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전도는 증언으로 “한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어디에서 음식을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Niles, 1951). 전도는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먼저 만난 성도들의 공동체로 인도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3. 전도는 성직자들만의 사명이 아니다. 초대교회가 전도를 성직자들의 임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전도는 세상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항상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양육하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찰스 스펄전은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사람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는 것과 같지만, 전도자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수천 명이 영생하도록 마실 수 있는 우물을 파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였다.

4. 전도는 단지 교회 좌석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하심이다(고후 5:14). 전도는 단지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을 교회로 초청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인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전도는 무엇인가?

복음 전도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맥가브란과 안(McGavran and Arn, 1977: 51)은 “복음전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선포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의 제자와 그의 교회에서 책임있는 회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사회적 봉사를 통한 현존 전도(presence evangelism)보다는 복음을 말로 전하는 선포 전도(proclamation evangelism)와 제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설득하고 양육시키는 설득 전도(persuasion evangelism)를 강조하고 있다.

델로스 마일스(Delos Miles, 1983: 47)는 “복음 전도란 성령의 권능으로 각 사람들과 사회의 조직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변화시키는 목적으로 하나님 왕국의 복음을 존재하게 하며(being), 행하게 하며(doing), 말하게 하는 것(telling)이다”라고 정의한다. 마일스의 정의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전도에 대해 좀 더 협소한 의미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싶다. “복음 전도란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들어와 새 생명의 삶을 살고 구원을 받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전도는 기쁜 소식이다. “전도하다”(euaggelion)라는 말은 “좋은”(eu)이라는 말과 “소식을 가져오다”(aggello) 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52회나 사용되었다.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는 전도자(preacher)이며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전도자이시다(사 55:11). 복음의 소식은 모든 사람들, 모든 민족에게 필요한 소식이다. 그것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2.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성육신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메시지이다.

3. 전도는 회개와 믿음으로의 초청(invitation)이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change of mind)를 의미한다. 회개(repentance)란 단지 잘못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이다. 회개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전도자들의 중심 메시지 중의 하나는 “회개하라”였다(행 2:38; 3:19; 5:31; 8:22). 또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믿고 그분을 인격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계 3:20). 데이빗 보쉬(2000: 611)는 전도에서 “회개와 믿음의 중심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을 향한 회심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회심은 단회적인 것도 아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 12:2)는 말씀은 새로운 삶의 양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4. 전도는 새 생명과 구원의 은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전도를 통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전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종류의 영적 생명을 가진다. 이러한 영생의 삶(요 17:3; 눅 10:28)을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중적인 차원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았고(칭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성화), 구원을 받을 것이다(영화). 구원은 신분(position)의 변화와 목적의식(purpose)의 변화와 완성(perfection)으로의 변화를 가져온다. 과거의 구원은 죄의 형벌(penalty)로부터의 구원이며, 현재의 구원은 죄의 능력(power)으로부터 구원이며, 미래에 완성될 구원은 죄의 존재(presence)로부터의 구원이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도되어져야한다. 새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이며,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전도와 교회성장

전도는 제도적인 교회의 팽창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실된 전도는 교회를 갱신한다. 또한 갱신된 교회는 전도한다.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집합적으로 복음의 변혁적 은혜와 능력을 적합하게 선포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생명을 주는, 생명을 변화시키는 역동성을 보여 주었다. 교회가 전도를 통하여 양적으로 성장할 때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 공헌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 기여하는 양적 성장(numerical growth)의 패러다임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cf. Hong, 2000: 194-95).

첫 번째는, 회심성장(conversion growth)을 추구하는 것이다. 필자가 1998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들의 회심성장 비율은 평균 32퍼센트인 것으로 밝혀졌다. 교회가 점점 제도화되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회심시키는 역동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회심성장이 안되고 있는 교회들은 영적, 구조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에디 깁스(Eddie Gibbs)는 “어떤 종교적 운동이 자라게 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게 될 때……나중에는 회심(conversion)보다는 사회화(socialization)에 의해 더욱 자라려는 경향성이 발전하게 된다”(1993: 18)고 지적하였다. 불신자보다는 기존신자에 의존하여 성장하려는 경향성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교회의 영성과 내적 생명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거의 50퍼센트(약 2,200만명)라는 엄청난 무종교인 비율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아직도 전도해야 할 대상 집단들(target groups)이 매우 많다는 것은 침체기에 있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의식을 전환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번식성장(multiplication)을 지향하는 것이다. 번식성장은 소그룹의 재생산, 교회의 재생산(개척)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재생산의 원리(the principle of reproduction)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어떤 생명체이든지 그 개체가 무한정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재생산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 증식, DNA 복제, 그리고 세포분열이라는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재생산된다. 교회도 재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포 증식, 즉 수적 성장(numerical growth)이 일어나야 한다. 초대교회의 수적 성장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의 번식, 제자들과 교회의 번식이라는 재생산을 수반하였다(행 6:7; 9:31; 12:24). 밥 로건(2001)은 “교회의 재생산은 교회 크기에 달려있지 않으며 교회의 사명의식에 달려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교회는 번식성장의 성경적 모델과 원리에 대해 좀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성장을 위한 전도 원리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도움을 주는 전도 원리들에 대해 여섯 가지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전도에 대한 세계적 비전을 가지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하셨다. 어떻게 소수의 무리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실 수 있었을까?  전도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이다. 전도의 사명은 교회가 자신의 위치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비전에 의해 움직일 때 가능하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세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비전만이 교회를 살아있게 만든다.

2. 불신자들에게 열린 교회가 되라

사도행전의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교회는 불신자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지 헌터 3세(George Hunter III, 1999)는 불신자들에게 열린 교회들이 사도적 교회들이며 현대 교회가 이러한 사도적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 새신자 정착률이 낮은 이유는 불신자들의 멘탈리티(mentality), 즉 불신자의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교회의 예배와 구조와 사역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변화된 삶을 통해 전도하라

복음선포에는 메시지(message) 뿐 아니라 메신저(messenger)도 중요하다. 말(words) 뿐 아니라 행동(deeds)도 중요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복음증거의 성공 비결은 그들 자신의 삶의 변화였다. 그들이 최초로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좋은 소식에 너무 감동이 되어 마치 술취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 안에 오셔서 거하시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신 일(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성령강림)에 대해 증언하였다. 진 게츠(Gene Getz)는 신약성경의 전도 원리를 논하면서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 전도는 교회 안이 아니라 세상에서 수행되었다고 강조하였다(1982: 55-57). 98년의 갤럽 조사는 한국 개신교의 이탈율이 가장 높다는 것과 교회 이탈의 주요 원인이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에 대한 실망이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삶에 매력을 느끼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Kirk, 1999: 73).

4. 전도의 교회 공동체적 성격을 분명히 하라

성경이 말하는 한 가지 분명한 원리는 모든 신자가 교육을 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역교회를 설립하셨다는 것이다. 새신자들은 가능한 한 즉시 개교회에 통합되어야 한다. 전도받은 새신자가 교회 공동체와 관련을 맺지 못하면 영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데이비(Davie, 1994)는 영국교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교회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적인 기독교인들(notional Christians)은 결국 기독교 신앙에서 점점 벗어나 표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 개교회의 건강한 성장이나 사역을 무시하거나 이와 대치되어 있다면 잘못된 것이다.

5.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지라

전략수립은 목적의식과 사명이 확실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조지 바너(George Barna)는 교회가 전략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너는 복음 전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도 대상의 계층이나 연령에 따라 전도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2001: 126-129). 불변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상황에 맞게 개발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원리이다(진 게츠, 1982: 64-66). 교회는 어떤 일정한 전도 형식만을 고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지역 교회는 상황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전도의 의제(agenda)도 동일할 수 없다. 창조적인 성육신 모델로 전도의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Stuttgart Statement on Evangelism, 1987). 명성훈 박사(2001: 70)는 효과적인 전도 전략으로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수용성의 원리를 따르라, 둘째 다양한 방법을사용하라, 셋째, 개인전도 지침을 마련하라, 넷째, 전도 대상자를 분명히 하라, 그리고 다섯째, 초청의 기회를 만들라. 우리는 영적인 사역에도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6. 전도는 성령의 역사임을 기억하라

전도는 인간의 사역 이전에 하나님의 사역이다(Kirk, 1999: 73). 하나님 아버지는 전도의 기반을 닦으시고, 성자 예수님은 초대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좋은 소식(good news)에 대해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감동시키신다. 오늘과 같이 전도의 도구들이 많이 발달한 시대에도 교회는 언제나 성령께서 위대한 전도자이심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전도 없는 곳에 성령이 있을 수 없고 성령 없는 곳에 전도란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전도하려고 할 때 사람과 돈과 프로그램에 의지하려는 위험성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교회는 잠잠히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회는 경배와 기도와 겸손한 순종 가운데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분을 증거하는 “전도 공동체”(evangelistic community)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자각이 교회를 생기있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갱신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전도 방법을 공식화했을 때(예, 사영리)의 장, 단점은 무엇인가?

2. 교회가 회심성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사도 바울의 자세(고전 9:19-23)에서 배우는 전도의 교훈은 무엇인가?

4. 영국에서 시작된 알파 코스(Alpha course) 모델이 불신자 전도에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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