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7] 하나님 나라와 선교 | 하나님 나라의 모델들 (Models of the Kingdom of God)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성경적으로 계속 비판하면서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비전을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러한 비전과 일치하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Howard Snyder, 1993).

미래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소망이다 (W. T. Fuckinger).

인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모델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각각의 모델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가 지향하고 구현해야 할 모델에는 어떤 것인가? 이 글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모델의 추구가 교회의 사역 방향과 선교에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

최근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에큐메니컬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 그리고 오순절주의자들)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비”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신비적인 속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 모델들이 발전해 왔다.

미래 희망으로서의 모델  (The Kingdom of God as Future Hope)

이 모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미래에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가올 하나님 나라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되어 왔다. 많은 학자들은 이 모델이 초대교회의 전승을 통하여 2세기 동안에 발전된 관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모델의 주요한 이미지는 “새 하늘과 새 땅”(a new heaven and a new earth)이다.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불의를 의로, 모든 고통을 평화로 바꾸어 줄 것이다. 이 모델의 긍정적인 면은 현재의 고통과 괴로움을 뛰어넘는 소망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는 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델에 의하면 현재 기독교인들의 사역은 세상이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에 제동을 거는 정도로 이해된다(Snyder, 1993). 이 모델은 인간이 모든 면에서 타락하고 파괴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모델은 신학적으로는 전천년주의(premillennialism)의 입장과 가장 가깝다. 전천년주의는 하나님 나라가 점진적이기보다는 급진적으로 도래할 미래의 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이 모델은 더욱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이 세상은 변혁되고 극복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참거나 도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제도적 교회로서의 모델 (The Kingdom of God as Institutional Church)

이 모델은 하나님의 나라를 제도적인 교회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모델은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 이후 발전되었다. 어거스틴은 “교회는 하나님의 현재의 왕국이며 그러므로 현재의 교회도 그리스도의 왕국이요 천국의 왕국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서구에서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로마 카톨릭 전통에서는 교황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였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별 구분이 없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큰 긴장도 없다. 이 모델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교회의 형태로 온 것이라는 관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졌을 때 이러한 논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신격화된 권위주의적 제도와 동일시하는 것을 배격하였다. 개신교인들은 교회의 제도화된 구조 너머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 사이의 구분이 분명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 교회는 이러한 모델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 모델의 장점은 교회의 권위와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단점은 교회의 제도적인 타락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적 체험으로서의 모델 (The Kingdom of God as Inner Spiritual Experience)

이 모델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영적인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개인 신자의 마음이나 영혼에서 경험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기독교적 영성의 “기쁨에 넘치는 비전”을 경험하는 것이다(Snyder, 1993). 이 모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매우 개인주의적인 관념을 보여준다. 많은 기독교 신비가들(Christian mystics)이 이 모델의 예증이다. 보다 발전된 공동체적 관념은 예배와 의식에 중점을 둔다. 예배를 통해 성도의 교제를 경험하며 예배를 통해 하늘 나라의 영역과 교제하게 된다.

이 모델에서 하나님 나라는 천국의 선험(foretaste)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실체는 이 세상을 넘어선 저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 예배를 통해,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 영원한 나라에 지금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부흥운동과 복음주의 운동 가운데에도 이러한 모델이 반영되어 있다. 이 모델의 장점은 강렬한 영성의 체험과 은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권이 현재의 기독교 경험과 교회의 삶에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회심에 초점을 두어 사람들을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 사회적 변혁에는 큰 관심이 없다.

현재적 변화로서의 모델 (The Kingdom of God as Present Change)

이 모델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이 모델의 첫 번째 예는, 신정국가의 추구이다. 이 모델은 구약 성서의 이스라엘 국가 모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독교 교회가 국가 종교가 되었을 때 크게 힘을 얻었다. 이 모델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치하고 사회적 경제적인 면에 하나님 나라의 방법론을 추구한다. 하나의 예로 칼빈의 신정 통치 노력을 들 수 있다. 칼빈은 인간 역사 전체에 걸쳐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세상 기관들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꼭 반대될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정치 영역에 침투하고 변혁시키는 것을 믿었고 실제로 정치적 영역에 관여하는 것이 교회의 증거요 사명이라고 보았다(Samuel and Sugden, 1999: 195). 이 모델은 하나님 나라를 실제적이든 잠재적이든 사회 안에 있는 현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델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은혜보다는 법에 의해 통치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세속화된 현재적 변화의 모델은 유럽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속화시켰다. 많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교회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제거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인간성의 시대를 원하였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능력으로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연속성을 위한 기반을 추구하였다. 계몽주의의 전통은 인간 이성의 선함과 도덕성에 대해 무척 낙관적이었다. 인간의 진보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재 중심적 모델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유토피안적인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막시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독교적 희망이 세속화되고 물질화된 차원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반동으로 무산계급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심창섭, 1990: 129). 해방신학도 어느 정도 이 모델을 반영하고 있다.

변혁적인 모델 (A Transformative Model)

변혁적 모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델이 현재적 변화의 모델과 다른 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월적이고 종말론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신정 국가를 지향하지도 않고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급진적 성격만 강조하지 않는다. 변혁적 모델은 역사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배격한다. 이 모델의 주요한 이미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선교적인 모든 노력들은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동안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한 선교적 현장에 대해 과학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가 실현되도록 노력한다. 필자는 이 모델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나타난 모델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변혁적 모델은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

1. 신비로운 긴장(Mystical Tension)

변혁적인 모델은 역사와 종말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을 유지한다. 즉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측면을 인정한다. 즉 역사의 현재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종말론적 소망을 가진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성경에 “천국은 …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세가지 함의점들을 가지고 있다(Cray, 1999: 32). 첫째,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일상생활의 측면들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살기에 익숙한 방법들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제도나 열망 등과 정확하게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함의점들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긴장과 신비를 성찰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은 또한 반응을 요구한다. 그것은 제자도에 대한 부름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책임을 요구한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현실에서 요원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소망을 잃지 않게 한다. 신비로운 긴장은 바로 이 소망 가운데 지탱이 되는 것이다.

2. 이원론의 극복(Overcoming Dualism)

변혁적 모델은 이원론을 거부한다. 인간은 창조될 때 영과 육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므로 영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물질적 삶도 귀하게 여긴다. 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서구 교회에 미친 이원론은 영적 세계는 거룩하고 영원하며 물질 세계는 속되고 사라진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원론적 사고는 역사 안에서의 선교적 노력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역사 안에서 수고하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 나라를 반영하게 만드는 성경적인 대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몸의 부활이다.

인간의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현재의 역사적 모습과 행위들이 다음 세상에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몸의 모든 약함들은 완전히 새롭게 변혁될 것이다. 이것은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를 부인하지 않으며 역사의 모든 부패를 일소하고 변혁시킬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이것은 역사 안에서 행해지는 노력들은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변혁적 모델은 역사 안에서 점차적인 발전이나 진보를 보지 않는다. 역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완성되는 그 길은 고난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의 노력은 아무리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실존이요 작용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노력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주도권으로만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나 순진한 낙관주의로 하나님의 나라를 논하는 것은 모두 비성서적인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 활동하시고 계시며 기독교인들이 그분과 함께 행동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므로 변혁적 모델의 중요한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서 실현될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질을 창출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Samuel and Sugden, 1999: 189).

3. 구분된 공동체성(Distinctive Community)

변혁적 모델의 이러한 질문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구별된 모습을 보일 때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바로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온다.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이 정의는 바로 메시아 통치의 핵심이다(사 11:1-5). 우리는 바울의 ‘하나님의 의’(dikaiosyne)에 대한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구약 히브리 사상에서 의란 “관계성의 모든 요구가 충족된 상태”이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회복된 백성들 상호 간의 정의로운 관계를 포함한다.

데이빗 보쉬는 바울의 ‘하나님의 의’가 개인에게가 아닌 공동체에게 주어진 선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보쉬, 2000: 265). 교회 안에는 격리된 개인이나 이기적인 개인의 여지가 없다. 이신칭의의 경험은 공동체 안에서 의미를 준다. 바울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엡 2:14)고 말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의 막힌 담을 허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관계의 화평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옷입게 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무엇인가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과 다른 가치, 즉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따라 살아야 한다. 교회나 기독교인이 하나님 나라의 윤리에 따라 살 때 세상과 구분되는 변혁이 가능해진다.

4. 사회에 대한 비전(Vision for Society)

변혁적 모델은 교회가 참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회 안에 있는 평신도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세상에서) 끊임없이 죄와 싸우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기독교인 각자가 처해 있는 현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부정하거나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도전하여 세상을 변혁해 나가야 한다. 존 스토트는 이를 “거룩한 세속성”(holy worldliness)라는 말로 표현하였다(Stott, 1984: 24).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영혼의 구원에만 적용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나라가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눅 18: 24-27).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 세계에서 영혼의 구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교회는 점점 쇠퇴하게 된다.

하나님의 비전을 향하여(Towards God’s Vision)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가치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영역에 침투해야 한다. 교회의 목회자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원리에 대해 설교해야 하며 평신도들은 삶의 현장에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전문성(사회를 아는 것)과 영성(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져야 한다. 또한 개인적인 순종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비네 사무엘(Vinay Samuel)과 크리스 썩던(Chris Sugden)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보자:

사회적 행동은 단지 우리의 영성의 열매들을 보이기 위한 소원 때문이 아니라, 사회, 역사, 그리고 세상에 대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의해 동기부여 되어야 한다. 기독교적 사회 참여에는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순종과 모든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활동과 목적이라는 두 가지 극들(two poles)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면서 첫 번째 입장만을 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사회적 행동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동체의 필요나 구조적인 문제들을 언급할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하나님에 의해 동기부여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독교적 비전이 없는 사회적 행위는 결국 마르크스적 대안들로 귀결될 수 있다는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더 나아가서 부정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기반을 둔 기독교적 사회 행위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1999: 197-198).

변혁적 모델은 하나님의 통치가 개인의 영혼과 몸, 교회 공동체, 그리고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전체 영역을 포함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비전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이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진정한 목적의식이 될 것이다. 다음 장부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장에서 제시된 하나님 나라의 모델 가운데 어떤 모델이 여러분이 생각해왔던 하나님 나라의 모델과 가장 가까운가?

2. 영적 체험으로서의 모델의 장점과 약점에 대해 논의하여 보라.

3. 선교에 있어서 이원론적인 사고(dualistic mind-set)가 미치는 영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몸의 부활”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라.

4. 존 스토트의 “거룩한 세속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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