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5] 하나님 나라와 선교 |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는 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Peter Leithart, 1993)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해 이 땅에 세운 하나님의 전령자이다 (왈터 라우센부쉬).
오늘날의 교회는 사유화된 신앙의 이교도적 상징으로서의 십자가를 넘어서서 더 깊이 십자가를 경험해야만 한다 (Rene Padilla, 1999: 449).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두 번 언급된다(마 16:18; 18:17). 예수께서는 교회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그리고 이어서 이런 약속을 하셨다. “내가 천국(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네게 주노라”(마 16:19).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라는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 속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와는 어떤 관련성과 역할이 있는가?

교회의 본질 (The Nature of Church)

교회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말씀(마 16:18-19)에 근거하여 교회의 본질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교회는 예수님의 것이다. “내 교회”라는 말은 “현재의 유대인 교회를 대신하게 될 새 교회”를 의미하며 예수의 주권이 교회를 통치하실 것을 보여 준다. 둘째로, 예수님은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말하셨다. 이 반석은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를 주로, 메시야로 인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세우리라‘는 말은 미래형이요, 이 말을 할 당시에는 아직 교회가 존속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실현은 당시로서는 아직 미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게할더스 보스, 1998: 77).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으로 탄생하였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넷째로, 예수께서는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구절을 교황의 사도적 계승과 교회의 제도적인 권위의 기반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까지 갖지 못했던 외형적 형태의 공동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어떤 것보다도 강력할 것인데 그것은 예수께서 교회의 주권자요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받아들인 진실로 중생한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온전히 다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근거로 하여 우리는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궁극적인 승리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세워 나가시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회의 역할 (The Roles of Church for the Kingdom of God)

교회가 점차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게 되었다든가 그리스도는 그 나라를 출범시키기 위해 오셨으나 그것을 대신하여 교회가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 속하지는 않지만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서 이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에 선행하며 교회보다 더 포괄적이다. 헤르만 리더보스(Herman Ridderbos)는 바실레이아(하나님 나라)와 에클레시아(교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바실레이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는 하나님의 대 구속 사역이며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고 바실레이아의 축복을 누리는 백성들이다…바실레이아는 만물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며 모든 역사의 완성점을 가리키며, 온 우주를 범위로 하여 은혜와 심판을 동시에 가져오며, 시간과 영원을 채운다. 에클레시아는 이 거대한 드라마 속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을 힘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편에 세움받은 백성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들로서 복음 선포에 의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어 함께 모이며, 현재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도 그 나라의 구원을 상속할 것이다 (1987: 440-441).

리더보스의 말은 하나님의 구원이 메시야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계시의 산물이기 때문에 종말론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고 영적인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형태로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메시아적 구원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우리는 (1)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시키는 것과 (2)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교회의 모습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하려는 것이 모두 다 성경적인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실로 거듭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요 3:3,5). 오직 중생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체험하고 그 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가시적 교회는 인간들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가시적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나님 나라를 역사 속에서 구현하기를 기대하신 것은 분명하다. 매고 푸는 권세는 교회에게 주어진 것이고 이것은 천국의 열쇠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그럼 교회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반영하고 구현하도록 부름을 받았는가?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구현되는 곳이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은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가시적 교회에만 종속되는 것을 의도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적 상황과 다원주의의 시대 속에서 교회가 세상의 다른 영역과 구분된 모습을 보여줄 때 복음의 변혁적인 능력이 나타난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통치권의 모델을 교회가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표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부여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당신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화평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복음을 전도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선교적 기반은 언제나 하나님과 살아있는 접촉을 가진 중생의 능력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셋째,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봉사자이다(존 스토트, 1992: 69-70).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해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말(선포) 뿐 아니라 살아있는 행위로 증거되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며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넷째,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경험(foretaste)이어야 한다. 교회는 현재적이며 불완전하지만 부분적인 모습의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경험한다. 지난 호에서 논의한 것처럼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음성에 예민해야 한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경험을 맛보는 교회이다. 하나님 나라의 선경험으로서의 교회는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존 스토트가 말한 것처럼 교회 공동체와 다른 세상의 공동체와 가장 구별된 점은 교회는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1992: 74).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만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교회: 역사적이고 종말론적인 공동체 (Church: A Historical and Eschatological Community)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이다. 교회는 또한 왈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henbush, 1981)가 말한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해 이 땅에 세운 하나님의 전령자이다”. 이것은 교회가 역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종말론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시사한다.

역사적인 공동체로서, 교회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 제한되며 현재 이곳에(here and now)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존재하는 상황은 무시될 수 없고, 선교의 대상지로 끊임 없는 점검이 필요하다. 교회선교의 과제는 현대적 경험들(contemporary experiences)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를 요구한다(또는 전제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표출되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선교가 세상의 삶 가운데 발생하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들 가운데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의 실체들을 다루어 나갈 수 없다(Newbigin, 1998: 83).

다니엘 하디(Daniel Hardy, 1989: 9)가 말한 것처럼, 창조 시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사회성과는 관련 없이 단순히 교회적이고 구속적인 사회성만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1) 기독교 신앙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위험성과 (2)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교회의 관념을 부당하게 제한시키는 위험성을 가질 수 있다. 참으로 구속된 사회성(redeemed sociality)은 창조된 사회성(created sociality)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교회와 사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경험적인 언어로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쌍방의 경우에 우리는 하나의 똑같은 실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하늘의 모습과 땅의 모습과 같이 영지주의적인 방법으로 양분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Schillebeeckx, 1996: 408 참고). 그러므로 교회의 신학적이고 선교적인 논의와 성찰은 무엇보다 철저히 경험적인 분석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Berger, 1969: 103).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종말 사이의 긴장에 있어서 균형잡힌 시각과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교회 선교에 있어 역사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선교의 신학적 차원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는 반면(Bosch, 1998),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배타적인 강조는 이 세계의 문제들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그 의미들을 계속 해석할 필요가 있다. 창조된 사회성의 각각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구속적인 사역 안에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니엘 하디가 말한 것처럼, 창조된 사회성으로부터 참으로 구속된 사회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Hardy, 1989: 47).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비전에 근거하여 승화되어야 한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재 이곳의 상황을 기억하는 교회 선교의 종말론이 필요하다. 그럴 때 기독교 종말론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미 도래하였으며, 오고 있으며, 완전하게 완성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통치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 통치의 공적인 현현을 기다리면서 현재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1998: 508).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와 역사에서 하나님의 숨겨진 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관점은 그것이 역사와 연관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종말론적인 성령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백성이요 다가올 시대의 백성이다. 교회는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궁극적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통치에 달려 있다.

교회: 천국 복음의 선포자 (Church: The Proclaimer of the Kingdom Gospel)

교회의 순례는 천국 복음 증거의 사명을 부여받은 순례이다. 천국의 열쇠가 교회에 부여되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의 배타적인 복음 선포자로서의 권위라기보다는 교회의 복음 증거의 핵심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복음의 증거는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고 그의 삶과 십자가 수난을 통해 복음을 드러내셨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는 복음의 생동감(vitality)과 전인성(holism)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명 공동체이다.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와 삶의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을 때 어떻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말과 행동, 설교와 삶으로 전파된다. 설교가 은이라면 삶은 금이다. 변화된 삶의 모습이 있는 설교는 아름답고 권세가 있다. 그러나 삶이 뒷받침되지 못한 설교는 웅변적일지는 모르나 감동이 없고 변화를 초래하지 못한다. 현대 교회는 천국 복음 전파의 두가지 기둥인 설교와 삶의 본을 동시에 붙들어야 한다.

현대 교회는 교회의 구조(structure)에 있어서, 설교(sermon)에 있어서, 그리고 섬김과 봉사(service)에 있어서 얼마나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능력을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직분의 권위만 강조하고 서열적 체제로 되어 있는 교회 구조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위한 은사와 기능 중심의 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 복음선포가 화려한 미사여구의 말로만 그치고 있다면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섬기고 돕는 봉사의 모습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서구 교회들이 산업혁명 이후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약자들을 돕지 못했을 때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어가고 세속화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의 사명은 십자가의 힘든 길이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 교회를 붙들고 있음을 상기하자.

생각해 볼 문제

  1. 만약 여러분이 교회를 정의한다면 가장 핵심적인 단어가 무엇이겠는가?
  2.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은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논평하겠는가?
  3.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4. 한국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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