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 하나님 나라와 선교 |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이해하는 한 그의 나라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그의 나라를 이해하는 한에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W. Rauschenbusch, 1928: 140).

20세기는 성령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시대이다. 20세기에 가장 거대한 개신교 교단이 된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본질과 사역에 대한 성찰을 촉발시켰다. 20세기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와 관심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많은 학자들(예를 들어, 조지 래드나 헤르만 리더보스)이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심도있게 논의하지 않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균형적 이해는 교회의 사역과 신학을 성경적으로 밸런스 있게 인도해 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과 그 시사점들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그리스도, 성령의 기름 부음 받은 분(Christ, Spirit-anointed One)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과의 동일시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성(surname)이 아니라 칭호(title)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자’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 전에 세례를 받으시면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셨다(눅 3:21-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임하심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또 예수를 광야의 시험으로 인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역의 초창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의 사역이 이사야 61장의 성취임을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께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가르침과 능력 사역이 “성령의 나타나심”(the manifestation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시사하셨다(마 12:28; 행 10:38). 성령의 나타나심의 이러한 표적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표적들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약 시대의 미래 시제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현재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하며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도록 구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이 두 가지는 똑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눅 11:2,13). 다시 말하자면, 성령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함이고 성령을 받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다(Cray, 2000: 37). 누가는 예수의 탄생과 승천 모두에 있어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O’ Toole, 1987). 만약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면(요 3:5), 즉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갖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면, 예수께서는 먼저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다. 갈보리 없이는 오순절도 없기 때문이다(요 7:37-39).

카리스마적 그리스도, 카리스마적 교회(Charismatic Christ, Charismatic Church)

그러면 예수와 성령의 관계가 교회 사역의 본질에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가? 성령과 교회,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성령과 그리스도의 상관 관계는 교회의 본질과 사역에 대해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로저 스트론스태드(Roger Stronstad, 1984)는 누가의 신학을 “카리스마적”(charismatic)인 것으로 특징지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활동에 초점을 두었고,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에서의 성령의 활동에 초점을 두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에게 오셨을 때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지배권을 시작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카리스마적인 그리스도(charismatic Christ)로서 사역을 행하고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성령을 주시는 분(giver of the Spirit) 뿐 아니라 성령을 가지신 분(bearer of the Spirit)으로 보여져야 한다.

스트론스태드(Stronstad)의 주요 사상 중의 하나는 오순절 날 성령의 전이(transfer of the Spirit)는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전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역사하는 성령과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의 연장인 교회 안에 역사하는 성령은 ‘동일한 성령’이라는 것이다. 물론 볼프와 리(Volf and Lee)가 말한 것처럼 예수와 교회에 대한 성령의 임재의 성격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다(Kärkkäinen, 1999: 77에서 재인용). 성경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예수에게는 성령이 “한량없이”(요 3:34) 주어지셨다. 교회에서는 성령이 “믿음의 분량을 따라”(롬 12:3) 역사하신다. 후대의 전통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예수는 “본질상”(by nature) 성령이 주어지셨다. 그러나 교회는 “은혜에 의하여”(by grace) 성령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동일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왔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속 하도록 능력을 받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카리스마적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사역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령으로 탄생한 것이다. 교회의 사명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서 발견될 수 있다. 초대 교회에 모든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과제를 공유하였다. 그래서 지역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가시적이고 집합적인 실체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지역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임명된 도구(appointed instrument)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 보내지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보내진다. 누가 문서는 교회의 선교와 사역이 “성령의 능력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예수님의 선교와 사역을 복사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성령의 오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인 희망은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선교에 영감과 동력을 주었다(Dempster, 1999: 45).

성령, 하나님 나라의 실행가(Holy Spirit, the Executive of the Kingdom)

교회는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사역과 메시지를 계속해서 수행해 나간다. 교회는 하나의 목적을 추구한다. 즉 온 피조물에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능력을 받는다. 성령은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실재화하기 위해 이미 교회에 계신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성령론(pneumatology)은 교회의 본질의 하나의 측면이 아니라 교회의 정수(essence)이며 본질 그 자체이다. 성령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하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실행가요, 대사요, 청지기이다. 권세는 왕의 것이며 성령의 역사하심은 왕적 통치의 실행이다(Cray, 2000: 38).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기름부음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 육체적 치유, 귀신의 압박으로부터의 자유함, 자유의 회복, 주요한 사회 경제적 개혁, 적대감의 종식, 하나님의 은혜로 특징지어지는 새 시대의 시작을 본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의 인격(person)에 기반을 두고 성령의 능력(power)으로 확증되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 감동되고 동기 부여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전인적인 관심에 감동되고 동기 부여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할,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전인적인 선교는 교회의 목적에 있어서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Hong, 2001: 296-298).

신학적 시사점들(Theological Implications)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고찰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필자는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1. 사회에 대한 관심

하나님 나라의 현존이 성령의 사역을 통해 경험되어진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제도적인 교회’를 통한 성령의 사역에만 제한된 것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성령께서는 주권적이시고 주도권을 쥐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이 계신 곳에 현존한다. 예수의 몇몇 비유들은 일상적인 것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시사한다. 만약 구약에서 성령이 이방인의 왕 고레스를 기름부을 수 있다면(이사야 45장), 성령은 동일하게 세상의 국제 정치나 지역 정치에서 역사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어떤 해석을 포함해야 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의 능력 사역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나 최근 몇십 년간은 선교에 있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오순절주의자들의 새로워진 관심을 목격하였다. 1998년에 열린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의 해외 선교부의 브뤼셀 회담은 전도와 사회적 관심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성명서는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변혁적인 힘을 선포하고 증명하도록 기대되며 또한 그럴 수 있다고 말하였다.

더글라스 피터슨(Douglas Petersen, 1999)은 오순절을 오순절답게 만드는 사회적 교리의 측면은 바로 성령세례의 사역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 능력을 부여 받을 때, 그들은 인간의 고통과 곤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일들”(Kingdom Works)을 하도록 구비되어진다. 피터슨(Petersen, 1996: 228-229)은 만약 오순절주의자들이 성령에 대한 그들의 경험들을 사회적 책임감을 태만히 하면서 자신들만의 교화를 위해 사용한다면, 성령의 선물들을 받은 이유를 오해하는 것이라고 또한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들과 성령의 은사들” 안에 깊이 간직된 사회적 가치들은 교회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그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Hong, 2001: 300-312).

폴 마샬(Paul Marshall)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의식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폴 마샬, 2000: 44-45).

필자는 마샬이 지적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이 세상에서의 성령의 활동에 초점을 둠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를 가지고 살아 간다(Hauerwas and Willimon, 1996: 6).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친히 입고 오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령의 사역은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진지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2. 성령에 대한 의존

이러한 선교는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또한 요구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삶의 총체성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어디에서 활동하는가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세상에 계시다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죄를 깨우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입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책망을 요구한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이 단순히 현재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매 순간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현존은 간헐적인 것이다. 매 순간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께서 주도권을 가지도록 성령 충만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엡 5:18).

3. 통전성의 지향

우리는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에 열려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적 사역과 사회 참여 사역, 전도와 능력 사역은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근대의 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도, 사회 참여, 그리고 능력 사역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최우선의 초점은 이러한 것들을 통합하는 일이다. 말씀의 선포(word), 사회 참여 사역(work), 그리고 능력 사역(wonder)의 통합된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의사일정(agenda)이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우리의 노력이 부분적이고 부적합하다고 도전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은 교회의 사역과 선교가 더 큰 진실성과 통전성을 가지도록 도울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교회의 탄생과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보라.
  2. 성령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은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3. 20세기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
  4. 하나님 나라 건설에 성령을 의존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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