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 하나님 나라와 선교 |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mission)과 사역(ministry)과 메시지(message)는 그분의 자의식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치유 사역과 기적,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된 소식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표징이라고 보았다 (Murray Dempster, 1999: 55).

예수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예수를 통해 우리 자신을 알게 된다.(파스칼)

오늘날 교회가 선포해야 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교회가 선포해야 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신 그 복음이다. 그러면 그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규정하신 것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기독교인에게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수를 통한 죄의 용서”(forgiveness of sins through Jesus)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약 신학을 좀 공부한 사람이면 복음은 “믿음으로 인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라고 대답할 것이다. 죄의 용서나 믿음으로 인한 칭의는 복음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는 데 있다(Sider, 1999: 31).

예수께서는 복음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는 사역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이다. 이 말은 사복음서에서 모두 117회나 나오고 사도행전에서 요한 계시록까지는 32회가 나온다(챈트리, 1993: 5).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포(proclamation)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시적으로 증명(demonstration)하는 사역이었다.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막 1:14-15).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예수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메시지였다. 사도행전 8장 12절에 보면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복음”을 전도하였다고 말한다. 바울도 에베소의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자신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파한 것”이라고 말했다(행 20:24-25). 바울이 로마에 갔을 때도 많은 유대인들을 모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거”하였다(행 28:23).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전도 메시지였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어떠한 것인가? 이 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예수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Meaning)

하나님의 나라를 영어로는 “the Kingdom of God”이다. 일반적으로 왕국(kingdom)은 왕이 권위를 행사하는 영역(realm)이다. 또 다른 의미는 주어진 영역에 속한 백성들(people)이다. 예를 들어, 영국(the Kingdom of Great Britain)은 영국 여왕이 통치하는 영국 영토와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용어를 이해하려면 근대적인 이해를 약간 옆으로 제껴 둘 필요가 있다. 조지 래드(George Ladd)는 하나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구스(malkuth)와 헬라어 바실레이아(basileia)라는 말의 근본적인 뜻이 왕에 의해 행사되는 권위(authority)나 주권(sovereignty)을 의미한다고 말한다(1981: 52).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받들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receive)을 의미한다. 무엇을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권이다(Ladd, 1981: 54) .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현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김세윤(1991: 27-35)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동적인 뉘앙스(dynamic nuance)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다스림이 펼쳐지는 영역, 구체적으로 그 다스림 아래의 백성들도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 그 통치권이 구현되는 영역과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를 통해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Already)

신약 성경의 복음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 사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구약 성경의 미래 시제(보라 그 날이 임하리니)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 시제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자신을 통해 현존한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통치이며 믿는 사람들의 마음의 “내적인 통치”(inner reign)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에서는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고 귀신들린 자가 자유함을 얻었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자연을 다스리는 권위가 드러났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그들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김세윤, 1991: 30).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주님의 선포는 인간 삶의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주와 모든 인간 역사의 기원과 의미와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Newbigin, 1978: 32). 그러면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확실한 통치가 현존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고유한 인격(person) 안에서 현존하였다. 따라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에 대한 반응을 촉구하였다. 예수께 반응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하우어바스와 윌리몬(Hawerwas and Willimon, 1996)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예수께 대한 믿음이 단순히 어떤 아이디어나 어떤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되어야만 하는 어떤 구체적인 실체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반응을 필요로 한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그 실체를 성령의 능력(power)을 통해 그분의 사역 가운데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다. “너희는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눅 7:22-23).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이고 현재적인 실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윤리적인 가치에 대해 선포(proclamation)하셨다(Cray, 1999: 29-30). 그것은 기존의 사회적, 종교적 가치들을 도전하는 새로운 가치였다. 루이스(C.S. Lewis)가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즉 그분을 따르기로 결단하든지 아니면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중간 지대(middle ground)는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응답하는 것은 믿음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회개를 요구하였다(막 1:15).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소개하였던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소유물을 나누는 것과 공직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자신의 이익이나 압박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지 말라고 촉구하였다(눅 3:8-14).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모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엔 이 세상적인 구분이 의미를 잃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경건한 바리새인이나 죄인이나 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되어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로 하여금 성, 계급, 인종, 경제적 수준 등 이 세상이 설정해 놓은 경계선에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Hauerwas and Willimon, 1996).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은 인간들 사이에 있는 모든 잘못된 경계선들을 제거해 준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지도자이며, 자신을 따르는 자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막 12:23-34). 이웃에 대해서 비록 적대적인 인종적 장벽을 넘어야 하더라도 “너의 도움이 필요하고 네가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셨다(눅 10:25-27). 비록 정복자인 로마 군인이 짐을 지우고 오리를 가게 하여도(마 5:38-48), 이웃 사랑은 원수 사랑으로 확대되어야 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는 유대인의 출생 신분이나 이 세상의 부 같은 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눅 3:8,9; 마 21:43; 눅 12:16-21).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로 뒷받침이 되는 회개를 필요로 했다. 회개는 하나님 통치의 선포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베옷을 입고 잿더미 속에 앉아 있는 그런 외적인 고행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적 변혁이며 전인(the whole being)이 하나님께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한스 큉, 1992: 7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은혜는 예수의 인격(person)과 사역(work)에 근거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바르게 믿어야 한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는 삶의 변화이다. 머레이 뎀스터(Murray Dempster, 1999: 56-58)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을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삶의 방법을 가지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복음이 좋은 소식인 이유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의 통치권”(롬 14:17)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는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 주어진 구원의 선물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칭의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주님은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복음은 개인주의적이고 내적인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Not Yet)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현재형 뿐 아니라 미래형 언어도 사용하셨다(마 20:1-16; 22:1-14). 이사야 선지자를 인용하실 때 예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만 빠뜨리신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측면이 바로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마 25장 참조).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수의 행동은 오해되고 거부되기도 하였다. 예수의 능력 행함은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의 신유 사역은 사단에게 기원이 있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였다(눅 11:14-15).

그러나 예수의 사역들은 그것이 실제 하나님 나라의 변혁적인 힘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표적(sign)이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시대이며 이 시대에 인간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현존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조용하게 건설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완성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께서는 복음이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며, 이 복음이 온 세상 온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종말이 온다고 말하신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로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시기에 더 가깝게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고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충성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임하실 것이고 모든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은 소멸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은 함께 간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Cross)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와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긴장이 있다. 그러나 이 긴장은 바로 하나님의 신비이다. 요한은 자신이 감옥에 갖혔을 때 예수가 진정 오실 메시아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요한이 감옥에 갖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명감과 사명감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한 것일까? 이에 대해 조지 래드(George Ladd)는 세례 요한이 당시의 ‘유대적 메시아관’이라는 배경 하에서 메시아가 오면 모든 악이 소멸되고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를 가진 것이라고 해석한다(1981:56).

예수께서는 자신이 천국을 가져왔다고 하시는 데 로마 병정들은 여전히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헤롯은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여전히 유대 백성들을 압박하고 있지 않은가? 죄가 만연하고 사악한 기관들이 형벌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데 어떻게 예수께서 천국의 소유자가 되실 수 있는가? 이것은 세례 요한의 문제 뿐 아니라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의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였다. 신비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는 “영원한 시대를 통해 감추어진 것이 이제는 드러나는 그 무엇”을 의미하고 있다. 신비는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것인데 인간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Ladd, 1981: 52). 인류 구속사에서 처음 드러내시는 진리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 두 가지 단계로 진행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오면 인간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대치될 것이다.

신비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기 위해 이미 도래하였으며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통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죄를 다 없애는 것은 아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한 심판의 불의 세례를 가져오는 것은 아직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도래하였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지만, 일반 대중에 의해 인식되지는 못한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최후의 추수가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생명을 가져오기 위하여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셨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설명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처럼 온다. 그것은 딱딱한 마음에 의해 거부당할 수도 있고 질식될 수도 있다. 그 생명이 때때로 시들거나 죽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자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명백한 약점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Cray, 1999: 33). 예수그리스도의 많은 영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권세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명백한 약함과 어리석음을 통하여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해진다(고전 1:18-2:5). 십자가를 통하여 사단은 ‘이미’ 패배되었다. 부활은 예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단지 병을 고치고 축사를 하는 힘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 가운데서 가장 확실히 보여진다. 십자가의 위력에 대해 도날드 크레이빌(1999: 330)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십자가는 처음 보기와는 달리 궁극적인 패배의 상징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빈 무덤이다. 십자가는 더러운 권력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폭로한다. 부활은 어두움의 주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승리를 상징한다…..터널의 끝에서 빛이 보인다. 우리 예수의 추종자들은 빈 무덤이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악과 대면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갈보리와 빈 무덤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와 은혜의 시대를 모든 사람에게 열어 주었다. 예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은 결국 사랑으로 완성될 것이다. 은혜의 시대에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가운데 건설해야 한다(빌 1:29).

생각해 볼 문제

  1.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메시지를 여러분의 말로 설명해 보라.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그 특징들을 연구해 보라.
  3. 구약에서는 다가올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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