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7] 하나님 나라와 선교 | 사랑의 불꽃 공동체 만들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행동하는 기독교적 사랑은 복음 그 자체만큼 오래된 것이다 (Michael Green, 2001: 24).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는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질화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영적인 갱신을 경험하였다. 그 중의 한 번은 대학교 2학년 때 길레스비라는 미국 평신도 선교사를 만났을 때였다. 그 선교사님은 알콜중독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변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셨다. 그분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설교와 삶으로 가르쳐주셨다. 그 선교사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필자는 내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독특한 존재인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생기자 필자의 삶은 역동적인 기쁨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 기독교 복음은 자신의 가치(self-worth)에 대한 확신을 제공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에베소서 5장 28절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 아내, 자기 남편, 더 나아가 타인을 사랑하기 힘들다는 것을 시사해준다(홍영기, 1995: 55).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라는 진리의 선포로 시작된다. 인간이 누리는 영생(eternal life)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본질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며 그 존재 양식은 사랑의 코이노니아이다.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신학적 용어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는 각각의 위가 다른 두 위의 생명에 상호 침투하고 교제하는 것을 주장하면서, 각 위의 개성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이 공유되고, 연합이 되고, 상호 호환이 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연합의 본질을 드러내준다(Zizioulas, 1985).  교회는 이러한 본질을 실현하는 사랑공동체로 소명을 받았다. 교회와 공동체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교회는 흔히 성도의 교제라고 말하는데 교제라는 원어 커뮤니오(communio)에서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이 파생하였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 안에서의 교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에 근거를 둔다(Land, 1993: 206).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라고 증거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자기 희생(self-giving)의 선교는 하나님의 존재적 본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본성 때문이시다. 우리가 부족하고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결단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탄생시킨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존재의 본질상 자기를 희생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로 하셨으며, 성자는 이 제안에 응답하셨으며, 성령을 성자의 오심을 예비하며 성자를 도우셨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절정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 (The Ministry of Jesus Christ)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절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당신의 가르침과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는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와 죄인을 받아들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 계명으로 사랑을 선포하셨다(요 15:12). 한스 큉(1992)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현재가 있으므로 미래가 있다. 세계 속으로 나가는 교회는 사명이 있다. 세상을 부르는 생생한 초대는 온 세계를 위하여 주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큰가를 함께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증거할 책임이 있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그리스도의 선교의 기초가 경계선 없는 무한한 사랑에 있었다고 역설한다(1999: 71-72). 그리스도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여기에 복음의 위대성이 있다. 사람들은 성, 지위, 학력, 재산, 인종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상대방을 차별한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는 이러한 모든 차별이 사라지게 된다.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섬김으로 사랑의 본을 보이셨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에는 죽음으로서의 예수의 자기 희생이 친구들에 대한 사랑으로 기술된다. 제자들은 예수의 친구들이다. 몰트만은 “예수와의 사귐 속에서 제자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었다”고 말한다(몰트만, 1992: 342). 십자가 수난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희생의 본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으셨다. 그것은 구체적인 섬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통해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에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셨다. 열 두 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십자가를 피할 수 있으셨지만, 세상 죄를 위하여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이다.

크리스천이나 기독교회의 특징은 물고기 그림이나 면류관 뱃지, 혹은 십자가나 목동의 지팡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The gospel of the cross)이다. 십자가는 두 가지 역설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인간이 얼마나 죄인이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롬 3:23).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롬 5:8). 십자가는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한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만남의 길을 열어놓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며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반응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진정한 영혼의 감동을 받는다. 필자는 어렸을 때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내 보이지 않으실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C.S. 루이스는 <스쿠루 테이프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 사단은 더 많은 능력을 사용하여 아무 순간이나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인간 영혼들이 느끼기 쉽게 임재하지 않는지 궁금한 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으로 믿게 하는 것은 그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의지를 단순히 짓밟는 것은 그에게는 쓸모없는 일이다”.

필자는 이 말이 하나님의 구원에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보이며 자신을 믿으라고 초청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강압적인 힘에 의해 믿음을 갖는 것이지 진정한 결단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말처럼 “영혼은 스스로 친구를 택한 뒤 문을 걸어잠근다. 그 신성한 자율적 결정에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은혜의 전율을 느낀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는 철저하게 자기희생에 기초한 사랑의 삶이었다. 그래서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현재가 있으므로 미래가 있다. 세계 속으로 나가는 교회는 사명이 있다. 교회는 온 세계를 위하여 주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큰가를 증언해야 한다”(1992: 284).

사랑의 불꽃 공동체를 향하여 (Towards a Community of Love)

교회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름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교회 자신이 먼저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교회의 영성은 하나님 사랑을 경험한 결과이다. 하나님과의 그리고 성도 간의 사랑의 관계를 떠난 영성은 있을 수 없다(달라스 윌라드, 2000: 323). 교회의 선교는 교회의 영성을 반영하며 영성의 향기는 사랑의 사귐과 나눔에서 우러나온다. 리차드 윌키(Richard Wilke)는 미국 교회가 “생존 지향적인 목회”와 “개인주의 지향적인 목회”로 사랑의 공동체성을 상실함으로 “잠자는 거인”이 되었다고 비평한 바 있다(은준관, 1995: 21-23). 사랑의 공동체성은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할 수 있는가?

1. 지도자가 먼저 사랑의 권위를 가지라

바울은 초대교회 때 영적인 권위를 행사하였지만 그의 권위는 사랑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영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과 헤어질 때 무릎을 끓고 서로 부둥켜안아 울었다. 그는 자신이 선교했던 교회의 사람들을 생명을 다해 사랑하였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모하는 자 됨이라”(살전 2:8).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선교와 교회성장은 지도자의 헌신된 희생과 사랑의 열매이다(cf. 허버트 케인, 1997: 233). 남부 인도의 순회전도 개척자였던 토마스 래그란드(Thomas Ragland)는 1858년에 사망하였다. 래그란드의 훈련을 받고 40년이 지나 이제는 노 목사가 된 사람에게 어떤 선교사가 래그란드의 선교훈련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 노 목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그분은 진정 우리를 사랑해주었습니다.” 사랑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주춧돌은 지도자의 모델링이다.

2. 사랑의 상징적 의식을 발전시키라

사랑은 단순히 영적인 것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형제들과 자매들”로 구성된 초대교회 공동체는 포옹을 사용하였다. 거룩한 키스도 사랑의 행위였다(고전 16:20; 데전 5: 26) 베드로전서 5장 14절은 이것을 “사랑의 키스”라고 불렀다. 그것은 성령의 사귐을 증명하는 형식이었다. 한국과 같은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육체적 표현이 생소할 수 있다. 사랑의 표현 및 훈련 의식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모델인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도 하나의 모델이다. 프란시스파에서는 병든 사람들의 발을 하나의 의식으로 씻어주었다. 사랑의 사귐의 본질을 “밥상 공동체“를 통해서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한 테이블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한 식구임을 상징한다(출 24:11; 신 12:7). 성만찬 의식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할 뿐 아니라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의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 삶을 다해 경험해야 하며 하나님 사랑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표현 양식들을 사용할 수 있다(몰트만, 1992: 355).

3. 성령의 충만을 유지하라

성령께서 오셔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성령충만의 증거는 사랑과 복음의 나눔이다. 진정한 사랑공동체의 삶은 밖을 향하게 된다. 하나님 사랑을 깨달은 공동체는 그 사랑을 증거할 수 밖에 없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보면 성령이 임하였을 때에 교회에 일어난 대표적인 특징은 “사랑과 나눔”(love and sharing)이었으며 이것은 선교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랑의 코이노니아는 교회 자체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선교의 힘이 되는 것이다(cf. 최성일, 1993: 343). 성령은 사랑과 선교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다.

4. 나눔을 실천하라

진정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다. 주를 따르는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준 후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지구상에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이 13억명 가까이 된다. 세계 6%의 사람들이 60% 가까운 부를 소유하고 있다. 유엔은 GDP의 0.7% 이상을 가난한 나라를 돕도록 권장하고 있으나 이 기준을 지키는 나라는 덴마크, 노르웨이, 네델란드, 스웨덴 네 나라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도 각각 0.1%, 0.2% 밖에 돕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단지 0.05%에 불과하다. 한국 교회는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의 교회들을 물질적으로 도우며 선교해야 한다. 교회가 이러한 운동에 나서야 민족의 장래가 밝아지고 정신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만약 교회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한다면 전 세계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나눔의 훈련은 교회의 소그룹 단위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개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나눔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사랑의 나눔은 성령의 열매이다.

십자가 사랑의 선교를 향하여

필자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근간이 십자가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정직성을 제자의 증거로 삼았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준수를 훌륭한 바리새인의 증표로 삼았다. 에세네파의 제자들은 금욕과 절제를 제자의 증거로 삼았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교회는 역사를 통해 면류관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세상에서의 면류관은 기독교회에 특권과 힘 등을 주었다. 그것이 선교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서구 교회들이 제국주의적 힘으로 선교했을 때 얼마나 많은 과오도 저질렀는가 잘 알고 있다.

필리핀의 데이빗 림(David Lim) 박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 선교의 핵심 이슈는 바로 “십자가 정신으로 선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월간 교회성장, 2002년 4월호). 세계 복음화의 능력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희생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crown)은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cross)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은 성경의 근본적인 주제이다(요일 1:3).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공동체는 가장 강하게 결속되며 닥쳐오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 사랑의 맛을 아는 공동체는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홍영기, 1995: 99).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문제는 하나님 사랑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God’s love)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랑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분명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마르틴 루터의 다음 시는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열망하게 한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소서

사랑의 가슴을 우리로 느끼게 하소서

우리가 온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평화 속에서 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필자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10대 사역에 대해 논의하였다. 한국 교회는 인간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이루어지도록 비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모든 목회자, 신학자, 기독교 지도자, 평신도들이 다 함께 감당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특수한 소명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전체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전체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서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균형이 중요하다.

생각해 볼 문제

  1. 삼위일체(trinity)라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 교회의 사랑의 선교에 시사하는 바에 대해 토의해 보라.
  2. 여러분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의미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라.
  3.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상징적 의식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 나누어 보라.
  4. 십자가 사랑의 정신으로 성공적인 선교 사역을 했던 선교사의 사례를 조사하여 발표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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