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자

찬양과 경배는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사 43:21). 다윗은 찬송의 프로였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4천명의 악단을 고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연주하도록 하였습니다(대상 23:5). 그런데 가장 위대한 악기는 바로 우리 마음과 영혼을 담은 인간의 몸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자신의 목소리로 찬양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는 손뼉을 치면서 찬양할 수 있고(시 47:1),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고(시 63:4), 서서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시 134:1). 무릎을 끊고 찬양할 수 있고(계 4:10), 발로 춤을 추면서 찬양할 수 있습니다(대상 13:8). 그런데 최고의 경배의 자세는 바로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배의 모델을 동방박사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 메시아가 탄생한 후에, 멀리 동방에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와서 엎드려 경배합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마 2:11). 지식도 있고, 부귀와 명예도 있는 그들이 왜 아기 예수에게 엎드리며 경배했을까요? 그들은 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별은 성령과 지혜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주님을 알아볼 수 없고 진실로 경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아기 예수님께 엎드렸다는 것은 최고의 겸손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시 132:7). 진정한 예배는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세주 났네…”(새찬송가 122장 후렴).

동방박사들은 멀리 동방 지역에서 찾아왔습니다. 그곳은 아주 먼 지역이었을 것이고, 당시에는 비행기나 기차나 자동차도 없었습니다. 산과 강과 물을 건너서 사막의 위험, 강도의 위험, 질병의 위험, 짐승의 위험 등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지치고 힘들어도, 여행 경비가 들어가도, 위험한 길을 건너게 되도, 그들은 메시아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학문적 호기심이나,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야망을 위해서 아기 예수께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 성탄의 계절에 동방박사들과 같은 경배의 목적과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경배”란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놀고 즐기고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로 탄생하신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하며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럼 동방박사들은 언제 예수님을 어디로 찾아온 것일까요? 목자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누가복음 2장의 아기 예수에게는 헬라어 “브레포스”가 사용되었고(눅 2:12,16), 동방박사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파이디온”이 사용되었습니다(마 2:8,9, 11,13,14,20). “브레포스”는 ‘갓난아기(baby)’를 뜻하는 말이고, “파이디온”은 ‘어린아이(young child)’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석근 목사(알이랑코리아 대표)의 글에 의하면, 헤롯왕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과 그 온 지경 안에 있는 모든 사내 아이들을 죽일 때,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기 때문에(마 2:16), 동방박사가 찾아왔을 때 아기 예수는 갓난 아기가 아니라 적어도 두 살 가까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본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탄생하셨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마 2:2). 따라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곳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장소는 다른 것으로 봅니다. 목자들이 왔을 때 ‘아기’(브레포스: baby)는 ‘구유’(manger)’에 누워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눅 2:16~17).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닌 ‘집’(house)에서 아기(파이디온: child) 예수께 경배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동방 박사는 아기 예수를 경배할 때, 빈손으로 오지 않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세 가지 예물을 드리고 갔습니다. 황금은 왕이신 예수님, 유향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몰약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속 사역을 하신 구원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의 물질과 몸과 마음과 가장 귀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귀중한 보배합을 주 앞에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맘도 다 함께 바치세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일세”(새찬송가 111장). 저와 여러분도 이 동방박사들처럼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 진짜 예배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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