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기를 사모하며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성경(하나님의 말씀)과 성자(하나님의 아들)와 성령(하나님 자신의 영)입니다. 초대 교회 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시대와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고 스데반이 순교하자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평신도 지도자였던 빌립도 사마리아에 전도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와 같은 이방 지역에 그런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그 곳으로 파송하였습니다. 두 사도는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당시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니라”(행 8:15).

영국 아버딘대학교의 하워드 마샬 박사는 이 구절이 가장 이상한 본문 중의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빌립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인데, 성령 내리신 적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의 복음전도 사역에는 결격이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었지만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라는 구절은 중생, 즉 거듭남의 체험과 성령침례(최초의 성령충만)의 체험이 구별이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요 14:16-17).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충만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볼 때 사마리아 지역의 성도들은 성령의 특별한 은혜에 대해 결핍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처럼,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위’로부터 임하여서 성령의 권능이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성령충만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팔스 피니는 1821년 10월 10일, 성령충만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호주의 위대한 부흥사 리오넬 플레처도 1897년에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도 1947년 Wales에서 받은 성령충만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도 1977년 8월 14일에 성령의 침례를 받으며 회개의 눈물과 하늘의 언어인 방언과 놀라운 하늘의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있고 그들의 신앙과 삶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표적은 다양합니다. 내적인 증거로는 구원의 확신, 기쁨과 평안, 열심과 헌신 등이고 외적인 증거로는 지체 간의 사랑과 순종, 방언이나 예언 등의 표적, 그리고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 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의 교인들을 만났을 때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행 19:2).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지 말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성령 받기를 위해 기도함으로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성령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행 8:15). 회개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기도할 때 성령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침례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되,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잠 8:17). 우리 모두 성령 받기를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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