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참는다

히브리서 11장이 믿음 장(chapter on faith)이라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장(chapter on love)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이러한 사랑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예수님이란 말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사랑의 의미가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우리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말 대신에 나 또 자신의 이름을 넣어보고 읽어봅시다. 우리는 사랑으로 행동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과 거리가 멀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특성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오래참는 것입니다. 참는다는 말이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오래참는 사랑은 첫 번째로 중요하고 반복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인간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며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3). 우리가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운다면 마땅히 인내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오래 참으셨습니다. 나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은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오래 참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오래참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조지 애틀리라는 중앙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숙소를 떠나 주변 지역을 탐사하고 있을 때 인근 원주민들이 그를 에워싸고 창과 몽둥이를 들고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의 손에는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동소총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원주민에게 만약 총을 쏘면 자신은 살아날 수 있지만, 그곳에서의 선교는 영영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고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추장이 그의 손에 있는 자동소총을 조사해 보았더니 열 발의 실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제야 추장은 그의 고귀한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그 선교사의 얼굴에 입을 맞추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곳 원주민들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 곳에 사랑과 전도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힙니다. 사무엘 존슨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일은 강인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오래참는 사랑을 배우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