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을 경험해야 참 이스라엘이 된다 (Peniel Leads to True Israel)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씨름을 하였고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창 32:30).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심방한 적은 있으셨지만(창 18장), 야곱에게는 직접 나타나셔서 함께 씨름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 명의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킬 정도로(왕하 19:35), 하나님은 강하고 전능하신 분이신데 어떻게(왜)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 씨름을 하실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야곱의 자아를 깨뜨려서 그를 하나님의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헌신하겠다고 서원을 했지만(창 28:20-22), 그 언약대로 살지 못하고 속고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자아와 고집을 꺾으시기 위해 야곱을 막다른 길목에 몰아넣으셨습니다. 20년 전에 원한을 샀던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모든 소유와 가족과 자기 생명까지도 잃게 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 되었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과 하나님의 씨름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야곱이 이겼다고 판정하셨습니다(창 32:28). 야곱이 이겼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오히려 야곱은 이 씨름의 막바지에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했습니다(창 32:26). 승자가 어떻게 패자에게 축복을 간청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래서 이 씨름이 사실상 눈물의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한 바 있습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 12:3-4). 그날 밤에 야곱은 울면서 하나님께 도우심과 축복을 간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인 브니엘이란 말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뵌 후에는 다 이상 과거의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속의 두려움과 고민도 다 사라졌습니다. 벧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이 맺어진 장소라면 브니엘은 그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해 씨름을 했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저 야곱을 축복하지 않으으면 나는 이 장소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야곱의 앞에 눈에 보이는 군대는 에서의 군대였지만, 진짜 싸움(전쟁)은 브니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하였을 때, 눈에 보이는 에서와의 전쟁에선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야곱의 씨름이 보여주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이 움직이면 땅도 풀립니다.” 하늘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할까요? 바로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대신 싸우십니다(창 32:1-2).

하나님은 씨름을 하시면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의 힘줄을 치셨습니다(창 32:25). 야곱은 위기의 순간에 아직도 인간적인 꾀를 내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에게 막대한 수량의 뇌물이나 다를 바 없는 예물(550마리 이상의 짐승들)을 준비하였고(창 32:13-15), 자식과 처자들은 얍복강을 먼저 건너 보내게 한 후에 자신은 뒤에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전략이 무엇이었습니까? 튼튼한 자신의 허벅지였습니다. 일이 잘 안되고 꼬이게 되면 이제 튼튼한 허벅지 힘을 이용하여 줄행랑을 치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얍복강에서 힘의 근원이 되는 허벅지 힘줄마저 끊어지자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철저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리고 의지하게 됩니다(cf. 렘 31:19).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후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 허벅지 관절의 힘줄을 먹지 않았는데요(창 32:32), 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저는 제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이스라엘이란 이름에 합당하게 믿음으로 살겠습니다”(cf. 삼하 8:4).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가 97세였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그 아집과 고집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97세의 늙은 나이에도 얍복강에서 그의 자아와 고집이 깨졌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브니엘을 경험해야 참 이스라엘이 되어 믿음의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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