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나 성도나 주님의 관용이 중요하다

바울은 성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고 권면했습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관용을 베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와 친한 사람은 결점도 눈감아줍니다. 그런데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은 작은 결점에도 아주 비판적인 입장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잘해주는 것이 쉽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겐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나, 믿음의 친구나 불신자에게나, 즉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는 더 관용과 너그러움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마음이 한두 번 상하면 그것을 풀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런 자세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위에 은혜의 단계, 또 그 위에 사랑의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3절은 지도자의 자질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여기 보니까 구타하지 말라고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말씀 대신에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오면 안 됩니다. 잘 다투는 성격의 사람은 영혼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잘 다투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성격을 용납하고 관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다양한 성격과 기질을 가진 성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성도들의 연약함이나 변덕, 그리고 부족한 점들을 품으며 관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성도들을 관용으로 대한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교인들도 목회자에 대해 관용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자 목사인 존 왓슨 목사가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원고 없이 설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메모 종이를 들고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데 설교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서 자주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초조해하거나 짜증 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후. 나이가 지긋한 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설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으실 땐 우리에게 찬송가를 한 곡 지정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설교에 대해 생각하시는 동안 저희들은 찬송을 부를게요. 저희 모두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목사님을 사랑한답니다.” 오랜 세월 후에 존 왓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런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골 교인들이 보여주었던 자비와 관용과 온정 때문이었다.” 성도들도 이렇게 목회자의 부족함에 대해 관용할 때 교회는 더 발전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성도나 다 주님의 관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2). 교회 지도자나 성도의 자격을 말할 때 공통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다투지 말고 관용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