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체험 (The Resurrection Experience of Magdalene Mary)

막달라는 마리아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아가 살았던 막달라는 ‘망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막달라 지방은 갈릴리 호수의 서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탈무드의 증언에 의하면 염색과 직물 공장, 생선 저장 및 가공과 조선업 등이 발달한 상당히 부유한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은 주민의 대부분이 이교도였고 다른 지역들보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치료된 뒤에 예수님을 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눅 8:2). 마리아는 귀신에 시달리면서 심한 정신병이나 광기에 가까운 우울증 등을 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녀는 귀신들로부터의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그 영혼도 죄악에서 벗어나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 나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전도에도 참여했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 때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막 15:41). 그녀는 자신의 물질과 소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눅 8:2-3).

막달라 마리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울면서 뒤좇아갔습니다(눅 23:27~). 골고다 언덕에서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가버렸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그곳에 있으면서 최후도 지켜보았고 장례도 참관하였습니다(마 27:56; 눅 23:55). 유대인 장례법은 죽으면 바로 장사를 하지만 주님이 돌아가신 그 날 저녁부터가 안식일이었기에 아무 것도 못하다가 안식일이 끝나는 새벽에 예수님 몸에 향품을 바르려고 마리아는 무덤에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밝기도 전에 일찍 찾아갔는데 가보니까 무덤에 시체가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요 20:10). 그들은 대제사장이나 그의 종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베드로는 이미 3번이나 종에게 발각되어 죽을뻔한 일도 있었고 제자들이 예수님 시체 찾는다고 돌아다니면 붙들릴 것이 뻔했습니다(요 20:19). 살아계신 예수님도 우리가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이미 돌아가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그런 절망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제자의 주님께 대한 사랑이나 열심은 막달라 마리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찾든 말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무엇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했던 것입니다(요일 4:18). 그녀의 온 관심은 예수님 시신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녀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고 또 무덤 안까지 구푸려 들여다보았다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요 20:1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 자신을 나타내셨을까요? 그녀의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나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나 또 무덤에 묻히셨을 때나 변함없이 예수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일 먼저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 때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마리아는 주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요 20:16). 전에 늘 부르시던 음성으로 친히 그 이름을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와 계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해도, 느끼지 못해도 주님은 결코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빈 무덤에 다시 찾아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찾아오신 이유는 자신이 오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을 막달라 마리아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였던 이 여성을 주님께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리아에게 부활의 증언의 사명을 주시며 보내셨습니다(요 20:17-18). 오늘날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014년 한국의 사망자 수가 26만 8천 100명이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평균 734명이 죽었고 매시간당 31명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으며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천국이 선물로 준비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이화여대를 세우신 김활란 박사님도 돌아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이라고 말하지 말고 환송식이라고 불러라.”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장례식을 환송식으로 바꾸게 합니다. 예수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두려움이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서 매일 매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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