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되자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의 특징을 이렇게 직접 묘사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그럼 온유한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온유한 자는 부드럽습니다. 부드러운 온유함이 강함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면도칼이 강한 것 같아도 면도칼을 세우려면 보들보들한 가죽에 문질러야 합니다. 부드러운 가죽이 강한 면도날을 마모시킬 수 있습니다. 대개 믿음이 좋은 사람의 한 가지 공통점은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인상이 부드럽고 얼굴이 부드럽고, 말하는 것이 부드럽고 행동이 부드럽고 마음씨가 부드럽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또 겸손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서로 쌍둥이와 같습니다(엡 4:2). 즉 온유한 사람은 겸손하고 겸손한 사람은 온유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거나 높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경하고 높여줍니다.

온유한 사람은 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온유란 헬라어로 ‘프라우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어떤 짐승이 주인에 의하여 잘 길들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온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상태입니다(약 1:21). 유명한 강해 설교가 데니스 레인은 온유한 사람을 가리켜서 “거인의 손 안에 있는 갓난 아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갓난 아이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인의 손에 있다면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자기 스스로는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지만 부드러움과 겸손과 순종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온유함으로 옷을 입어야 하고(골 3:12), 온유함으로 자신의 지혜와 총명을 보여야 합니다(약 3:13).

성경에는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가 된 사람들의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먼저 이삭은 불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농사해서 백배의 소출을 얻고 마침내 거부가 됩니다(창 26:12~). 그런데 이삭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메우고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이삭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조용히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우물을 파자 샘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온유함은 축복의 샘을 터뜨리는 비결입니다. 또한 모세는 원래 그 기질이 불같고 온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감독을 살인하였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숭배하자 화가 나서 십계명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연단과 하나님의 훈련으로 당시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민 12:3).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잡으려는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드릴 정도로 다혈질적인 인물이었습니다(마 26:51~). 그러나 나중에 온유한 성품의 사도로 변화하게 됩니다(벧전 3:8). 사도 바울도 세상의 자랑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인정할 정도로 겸손한 자가 되었고, 대적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보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딛 3:2). 사도 요한도 성격이 불 같아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지어주신 별명이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막 3:17).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자 하늘의 불로 멸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고(눅 9:55), 형 야고보와 함께 하나님 왕국에서 높은 자리를 구할 정도로 야심도 있었습니다(막 10:37).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변화되어 사랑에 대하여 설교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요일 4:20). 영적인 리더는 항상 온유해야 합니다(딤후 2:24).

그럼 온유한 자에겐 어떤 축복이 올까요? 무엇보다도 대인관계의 복과 번성의 복을 받게 됩니다(시 18:35). 또한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9). 땅은 물질의 복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언약과 형통의 축복의 표징입니다. 온유한 자는 또한 마음의 쉼과 평안을 얻습니다(마 11:29; 시 37:11).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워야만 합니다(마 11:29). 이스라엘에서 큰 밭을 갈거나 큰 연자 맷돌을 돌릴 때에는 소 두 마리를 연결해서 같이 밀게 합니다. 힘이 세고 경험이 많은 소를 바깥쪽에 세우고 그 안쪽에는 더 약하고 경험이 적은 소를 배치합니다. 바깥쪽에 있는 소가 리드를 하게 되면 안쪽의 그 리드에 맞추어서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우린 예수님의 리드와 속도에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무거운 멍에는 예수님이 메고 가시기에 내가 메는 멍에는 훨씬 쉬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멍에는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유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23). 성령께서 임재하시면 우리 마음을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으로 수술해주십니다(겔 36:26). 참된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온유해야 합니다(시 37:1; 딤후 2:24; 갈 6:1; 약 1:21; 벧전 3:15; 엡 4:2). 온유는 참된 사랑의 특성입니다(고전 13:4).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 말씀의 멍에를 메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온유한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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