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예수님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서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였고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면서 로마의 압제 하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해하기 아주 힘든 가르침을 전하자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53). 그런데 이 말은 영적인 말씀이었습니다(요 6:63).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였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기대감에 실망하여 떠나자 주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고 대답하였습니다(요 6:68). 그렇습니다.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교회에 붙들리게 하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천국과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71). 이는 가룟 유다를 의미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대거 예수님을 떠나갈 때 가룟 유다는 그들과 함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제자 공동체에 남아 있었던 것은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야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혹시나 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마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다른 제자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떠나갈 때에 유다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마귀였습니다.

“너희 가운데 마귀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은 마귀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항상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마귀는 내 주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하고 그 계획을 만류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막 8:33). 나랑 가까운 사람들이 마귀의 충동질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거나 또 나를 공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옛 말에도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마귀는 내 안에도 역사합니다. 즉 마귀의 생각을 내 안에 넣어줌으로써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마귀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항상 깨어서 유혹을 당하지 않고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도 보면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습니다(마 13:25-30). 이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다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내 마음 안에도, 교회 안에도 마귀는 역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동기로 교회를 다녀서는 안됩니다.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를 붙들고 예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는 예수님 제자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지만, 영생의 말씀을 깨닫지도 붙잡지도 못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그 배후에는 항상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항상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의 영생의 말씀을 잘 배우고 꽉 붙잡고 항상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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