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을 잃으면 기쁨도 잃는다

한국에서 약 10년간 생활한 영국의 한 언론가인 다니엘 튜더(Daniel Tudor)가 한국에 대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제목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였습니다. 한국이 엄청난 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한국인들은 놀랍게도 기쁨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만족할 줄 모르고 지나친 경쟁 구도 가운데 살아가면서 쉽게 지치고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없어지면 조그만 일에도 짜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차를 추월하다가 또 주차 때문에 시비가 붙고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다 마음에 기쁨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빌 4:4). 그런데 그 다음에 바울이 한 말이 또한 중요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이것은 기쁨과 관용의 마음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갖게 되거나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있게 되면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에는 루디아와 많은 부녀들이 화목하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고 갈등 관계에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빌 4:2). 이들의 갈등은 기쁨의 공동체인 교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이나 혹은 남의 잘못 때문에 내 기쁨을 잃어선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내 안에 기쁨이 있느냐 아님 근심과 분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분노나 상처가 다 치료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또 상처를 받을까봐 남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쉽게 용납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때 우리는 왜 이 땅에 살 때 더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했는가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마음을 버리고 이해하는 마음, 용서하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내 영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므로 빨리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의 기쁨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요 15:11). 내 마음이 기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부정적인 생각만이 맘속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마음에 좀 여유를 가지고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라이벌 더글러스가 대통령 후보 합동 회견 자리에서 링컨을 가리키며 공격하였습니다: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 인격자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음성으로 응수했습니다: “더글러스 후보가 지금 저를 두고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잘 생긴 얼굴로 나오지 이렇게 못 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이 얼마나 여유로운 마음입니까? 링컨은 나중에 “나처럼 밤낮으로 긴장하는 사람에게 웃을 일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죄와 허물이 많고 배신한 우리를 용서하사 사랑과 관용으로 품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관용의 마음을 가짐으로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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